웃음 가득한 ,김지환을 만나다.

삼성중공업 설계팀 김지환과의 인터뷰

에디터_ 김영녕  사진_ 정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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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환씨. 자기소개 부탁 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슈퍼천재 김지환입니다. 저기 멀리 거제도 삼성중공업에서 설계 일을 하고 있는 남자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오늘 어떤 인터뷰를 해주실 건가요.
최악의 상황에서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제 이야기를 통해 취업을 포기 하려는 분들께 힘을 드릴 수 인터뷰를 하고 싶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최악이 상황이요?
네. 고3 생활 때 시작 된 거죠. 여름 방학이 끝나고 9월쯤에 고모할머니께 연락이 왔어요.캐나다에서 자수성가하신 분인데, 건강문제로 자녀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대를 이을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고모할머니께서 저를 캐나다로 보내면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한달 고민 후 가기로 결정했어요. 더 없이 좋은 기회잖아요.

 

그렇죠. 그럼 수능 안보셨겠네요?
수능 포기했죠. 9월부터 공부 대신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한참 했어요. 그래도 수능 보긴 봤어요. 수학만 풀었는데 그 것만 100점 맞고 다른 건 다 성적이 바닥이었죠. 하하하. 그런데 캐나다 학생비자 받으려고 인터뷰하는데 제가 자격이 없대요.

 

네? 왜요?
부모님 재력이 여의치 않아서 안된 다는 거에요. 유학을 가려면 부모님 통장에 어느 정도의 돈이 예금되어 있어야 하는데 저희 집 형편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건 다 준비가 됐는데 오직 그 이유로 못 가게 됐죠. 수능도 제대로 안 봤고, 준비한 유학 길도 못 가게 되고 이도 저도 안된 거에요. 최소한 인하대,한양대 갈 실력이었는데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보니 화가 났어요. 그렇다고 부모님께 그걸 보일 수는 없잖아요. 혼자 끙끙 앓다가 심지어 화병까지 걸렸어요.

 

에효. 말만 들어도 어땠을 지 짐작이 가요.
네. 그래서 늦깎이 방황을 했어요. 결국엔 재수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할 때였어요. 그래도 조금씩 응원해가며 공부해서 세종대, 건국대에 갈 수 있는 실력이 됐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만 점수가 나오다 보니 결국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2003년 8월 군 입대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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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시면 어떡해요. 그럼 8월 입대 전까지 아무 일도 안 하신 건가요.
허허허. 수능 본 뒤부터 아르바이트만 조금 했어요. 사실 이 때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죠. 그 때 사기를 당해요. 주민등록번호만 빌려주면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준다는 말에 속아서 1000만원 정도 사기를 당했죠. 그런데 그걸 부모님께 속이고 군대에 갔어요.  

 

네? 일이 점점 더 엉켜가네요.
그렇죠. 결국엔 부모님께서 알게 되시고 그 빛은 동생이 대신 갚아줬어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여동생이 있거든요.

 

다행이네요. 하하하
그렇죠. 동생 잘 뒀죠. 그 때, 군대를 2003년도에 갔는데 2004년에 삼성에서 만든 반도체가 부흥하기 시작했어요. 이것도 동생 덕분에 알았어요. 동생이 공부를 잘했는데 일부러 실업계에 가서 삼성전자 반도체에 취직했어요. 일년에 보너스만 1000만원씩 타오는 거에요. 그래서 어머님이 저한테 물어봤어요. 캐나다에 다시 갈지 아님 전문대라도 가서 취업할지. 저는 집안형편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아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 하신 건가요?
네. 전문대라도 가야겠다 생각하고 삼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수시로 전문대 기계과에 1등으로 26살에 입학했죠. 동기뿐만 아니라 선배도 모두 저보다 어리고 군대도 안간 애기들인 거에요. 그래도 제 목표는 확고하니 공부만 했어요. 삼성전자 수원, 하이닉스 반도체를 목표로 했죠.그런데 2학년 1학기 5월에 삼성중공업이 공채 떴어요. 거제도 인데 친구가 써보자고 제안하기에 연습 삼아 도전했죠.

 

그러셨구나. 이제 일이 잘 풀리는 건가요?
(웃음). 네. 이제 잘 되가요. 공채 자기소개서 쓰고 접수처에 접수인원 물어보니 경쟁률이 300:1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문예부 실력을 발휘해서 열심히 쓰고, 당시 친구 중에 방송기자, 선생님 친구들이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30번을 넘게 고쳤는데 근데 그게 통했던 거죠. 1차 통과하고 2차는 SSAT는 수학이 많다 보니, 그 쪽엔 자신이 있어서 시간 내에 다 풀었어요. 그리고 2차 시험 보고 바로 면접 준비했어요. 합격을 했든 아니든 친구들이 자기소개서 위주로 200문제 뽑아줘서 달달 외웠죠. 그리고 합격소식 들었고 동생이 노하우도 알려줬어요.

 

오. 일사천리네요.
네.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면접 때에는, 밥 먹고 우황청심환 한 알 먹고 가니 옆집 아저씨들과 얘기하듯 면접 봤어요. 그래서 입사 합격메일이 왔죠. 그렇게 거제도에 입성하게 되요.

 

멋져요. 삼성중공업 구조 설계팀에 계신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하시는 거에요?
배의 구조를 짜는 거에요. 저는 배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는 그 부분을 구조설계해요. 쉽게 말해 배위에 집 짓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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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입사 처음부터 그 일을 하신 건가요.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진짜 배를 만드는 도면을 그렸어요. 대학교에서 아무것도 안 배웠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 다시 배워요. 무엇보다도 영어. 배는 외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니까, 외국인들이랑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에요. 또 노하우 공유가 없어요. 스스로 열정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센스가 부족했어요.

 

적응하기 힘들었겠어요. 
많이 힘들었죠. 삼성에는 OJT교육이라고 있어요. 1등 아니면 하지 말라고 말하는 교육인데, 그래서 진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100명 중 10등안에 들어갔죠.

 

다른 일로는 힘든 점 없었나요?
거제 사람들이 선입견이 있어요. 서울에서 온 사람은 곧 돌아간다고 생각하죠. 일 중에 수정작업 시간을 체크해서 현장에서 거꾸로 올리는데, 수정작업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를 많이 안 봐주셨죠. 조선소에는 그런 말이 있어요. ‘사람 하나 잘 두면 배도 공짜로 만든다.’ 사람으로 인해 어려운 점이 많았죠. 텃세랄까? 그래서 선배지만 형처럼, 후배지만 동생처럼 지내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결혼식 동영상, 돌잔치 있으면 애기 동영상 만들어주고 그러면서 친해졌죠.

 

그러셨구나. 원래 집이 인천이신데 거제도로 가셨으면 주변에 아무도 없었겠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얘기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그 곳에서는 지인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동네가 좁아 남 얘기도 못해요. 하하하. 그래서 페이스북을 하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어느새 1000명이 넘었고 그러다 보니 생일 날 외국에서 커피가 오고, 강원도에서 감자 선물이 오고, 통영에서 옥수수가 왔어요. SNS의 힘을 깨닫게 됐던 계기였죠.

 

온라인으로 관심을 돌리셨구나. 그럼 퇴근 후에는 집에 가서 컴퓨터와 놀았나요?
사실 공대생 70%가 그럴 거에요. 서울 본사 아님 전부 지방근무자에요. 저는 워낙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니 당연히 그쪽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1-2년동안은 아무것도 안하고 인터넷, 쇼핑만 하면서 집만 그리워했어요. 그러다 3-4년 정도 되면서 취미생활은 따로 없었는데, 원래 방송일, 영상,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해서 회사에서 그런 일을 우연히 했죠.

 

아까 말해주신 애기 돌잔치 동영상이요? (웃음)
네. 하하하. 회사 분들 결혼식, 애기 돌잔치 영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갈수록 ‘난 여기에 살고자 왔는데 회사 다니려고 여기 온 것만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은데 그걸 모르고 살았죠. 이제와 생각해보면 주는 것만 받아 먹으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지만 잘 헤쳐나가고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됐어요. 그러니 무엇이든 계속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기타 치는 법도 배우고, 돈 모으는 방법도 공부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공부하고, 봉사활동으로 영어 번역하고, 부산에서는 재능기부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이제는 이것저것 많이 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셨구나. 작사/작곡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전문적으로 한다기 보다 공모전을 통해 하는 거에요. 사실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재미 있으니까 해요. 사실 주변에서 많이들 말해요. 다른 사람들은 며칠 동안 공모전 준비만 해서 제출하는데 저는 퇴근 후 몇 시간 준비로 내는 게 의미가 있냐고. 그런데 제 만족이에요. 이걸 함으로써 난 이런걸 해봤다. 라는 만족이에요. 꼭 당선이 되려고 한다기 보다 재미로 하는 거죠. 사실 지방 근무자들이 집-회사 반복이에요. 우울증까지 걸릴 정도로 심하거든요. 저도 스트레스를 못 풀다보니 위궤양에서 위암으로 넘어갈 정도였어요. 한 달 만에 15kg빠지는 거에요. 그러고 있는데 우연히 회사 분께서 ‘퇴근 후 생활이 재미 있어야 그게 회사 다니는 목적이 아닌가’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아 그렇지.’ 수긍이 가는 거에요.

 

그렇죠. 순간 다가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이것 저것 시작하신 거군요.
네. 사실 이직을 안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준비를 하다 보니 제가 다니는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어디를 가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지금 이 상황이 더 낫겠다 싶었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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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외국가면 애국자가 되잖아요.
맞아요. 그러다 보니 팟캐스트에 출연도 했어요. 페이스북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그 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지방에 사는 직장인의 고민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었죠.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래서 그 분들과 소통을 많이 하게 됐었죠. 그러면서 제가 깨닫게 된 건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인지, 할 수 있는 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어디가서 들어볼 수 없던 이야기 덕분에 많이 들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독자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나요?
취준생들에게는 정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회사 이름만 갖고 취업을 선택하는 건 자신한테 마이너스임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직장인분들께 일은 누구나 재미없을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시간이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삶이에요. 항상 무언가를 시도하며 자신의 삶을 재미로 채워가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얘기를 할 수 있게 돼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회사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지원조차 하지 않고 취업을 포기 하려는 분들. 집-회사-집-회사 이신분들. 우리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살아요.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지환씨의 말. 물론 모든 일이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죠. 하지만 반대로 재미있게 다가갈 수는 있어요.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지방근무자의 일상을 낱낱이 파헤쳐 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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