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90년대생을 향한 편가르기에 대하여

90년대생을 향한 편가르기에 대하여
 
90년대생을 키워드로 내세운 기사, 출판물이 나오는 걸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카페 곳곳에서 중장년층이 책 이름을 얘기하며 후배를 씹거나 점점 도가 지나치게 편가르기에 골몰하는 기사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성별 갈등을 부추기며 조회수, 댓글을 잡아먹던 언론판에서 새로운 먹잇감, 부장에게 보일 수 있는 세련되어 보이는 논쟁거리, 세대갈등으로 또래를 돌려 까며 윗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기자들의 어떤 심리 등이 복합돼 아름다운 괴물 키워드 하나가 또 탄생했다. 그러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갈등거리 없으니 갈등을 찾아야 하는 그들의 심정, 아주 잘 이해한다.
 
수년간 이 판에서 구르면서 뭐. 힘들고 자시고. 그런 거 다 괜찮다. 별 갈굼? 괜찮아. 근데 그냥 그런 거다. 아닌 건 아닌 거다. 90년대생 내 후배는 야근을 밥 먹듯 하고 90년대생 내 동기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새빨간 눈으로 하루를 마친다. 80년대생 그 선배는 '야근 왜 하냐'고 집에 가고 '너 일하지 마. 나도 해야 돼' 하고 깐다. 70년대생 그 선배는 손버릇이 나쁘다. 80년대생 또 다른 선배는 별 같지도 않은 거 매일 힘들다고 야단이고 80년대생 그 팀장은 잠자느라 연락이 안 된다.
 
자, 어때? 내가 이런 걸 통계 삼아서 주변 코멘트 따서 '윗 세대와 달리 출근 밥먹듯 안 하는 80년대생' 혹은 '윗 꼰대 눈치 보느라 야근만 하는 90년대생' 키워드 뽑아서 애들 적당히 통계 돌린 척 해서 숫자로 기사 딱 하나 써두면 또 그게 사실이 된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남 씹고 싶은 세상에서 가짜 숫자 띡 하나 던져 주고 어떻게 씹을지 리드해주면 보통 다 그대로 씹는다. 명분이 생겼으니까. 아싸라비야다.
 
편가르기를 통해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듯 나대고, 그걸 또 자기들끼리 돌려본다. 그리고 미소 짓지.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90년대생, 정말 이상했구나!' 물론 이럴 수 있다. '자기계발과 일을 동시에 하고 싶어하는 게 90년대의 특징이라고 칭찬한 거야 빼액!' 근데 그 칭찬 어디 갔나. 어디서도 회자되지 않는다. 결국 먹혀 들어간 건 까기 위한 까기일뿐이다. 까는 것만 널리 퍼져서는 중립인 체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낸다. 사실이니 어떻게 하냐는듯.
 
참, 쓸데없는 논쟁거리 담은 기사를 읽을 땐 그 기사가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읽는 게 아니라 의도를 봐야 한다. 언론? 그런 게 어딨어. 이익집단의 장구 소리일뿐. 누구 말 따라 그들에겐 펜이 아깝고 종이가 아까우며 바이러스다. 하루 실적을 위해 자신을 빛내려고 가짜 논쟁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 섹시해보이는 제목, 편가르기 하는 제목, 특정인을 교묘하게 편들지만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제목을 다 눈치채고 걸러내는 능력을, 누구나 가졌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겠지만.
 
90년대생이 사회에서 일한 거? 꽤 됐다. 갑자기 왜 야단이냐고? 봐. 논쟁거리가 필요하다. 성별 갈등? 여전히 섹시한 아이템이지만 많이 죽었다. 안다. 당신들이 뭐라고 할지. 아직 평등하지 않아! 빼액! 안다. 근데 나아가고 있잖아. 좋아지고 있잖아. 또, 예전과 달리 '잘못 건드리면 X 된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퍼져서 건드리기 쉽지 않다. 근데 90년대생? 새롭다. 아이템이! 90년대생은 이미 5~6년 전부터 사회에 진출해 일하기 시작했는데도 말이지. 왜 새로울까? 자기들 딴엔 처음 나온 얘기 같거든. 논쟁을 찾는 괴물들은 기자, 작가, 편집자라는 이름 달아주기도 아깝다. 특히 개개인의 특성을 집단화하는 무서운 인간들은 더더욱.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https://brunch.co.kr/@gr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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