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평대장 툴툴이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온국민의 욕 중에 ㅂ으로 시작해서 ㅅ으로 끝나는 두글자짜리 욕이 있다. 시작부터 욕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이 두글자짜리 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고? 바로 병신력 보존의 법칙이다. 
 
 
ⓒ 병신력 보존 법칙이라고 들어 봤니?
 
 
병신력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겠다. 보통 병신이 여러 명 있거나 한 명이 상병신이거나 해서 어떤 조직이든 병신력의 총 합은 보존된다는 법칙인데, 더 자세한 이론이 궁금하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무튼, 이 병신력이 보존되는 것처럼 일정한 비율로 보존되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건 바로 툴툴이의 비율이다. 죽겠어- 라는 말과 정말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상징으로 삼는 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데, 다수의 리틀 툴툴와 소수의 헤비 툴툴이들이 비율을 맞춘다는 점에서 병신력과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인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 다수든 소수든 짜증 나는 정도의 차이는 유사한 병신력과 다르게, 툴툴이들은 서로 만나면 놀라울 정도의 시너지를 내며 짜증의 정도도 급상승시키곤 한다.

 갑자기 병신력이니 툴툴이니 얘기를 왜 꺼냈냐구? 얼마 전 집에 가는길에 만난 툴툴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하고 회사에서 나오던 찰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훤칠한 키에 모범생 스타일의 안경을 쓰고 다니는 입사 동기 S였다.
S : 오랫만이네~ 집에 가?
나 : 어 나는 이제 슬슬 가려고- 형은 안가?
S : 나도 가고 싶은데 야근하면서 우리 팀원들이 지금 저녁 먹는다고 식당으로 오라고 해서 거기 가는 길이다 ㅂ제대ㅑㅗ헤ㅐㄴㅇ몰 (잘못 쓴 게 아니라 정말 이렇게 들렸다. 알아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오 열받아!! 어디로 가?
나 : 나야 지하철 타러 가지~
S : 그럼 거기까지 같이 가자.
같은 건물에서 근무해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인 동기를 오랜만에 만난 나는 선뜻 동의했고, 지하철역까지 약 10분간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미처 몰랐던 그의 모습을 알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헤비 툴툴이였던 것이다. 


 그는 회사 정문에서 채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회사와 자기 팀과 본인의 업무에 대해 소리 높여 툴툴거리기 시작했다.본인이 얼마나 억울한 상황에서 지내고 있으며 얼마나 죽을 것 같은지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하듯,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차라리 주위에 우리 회사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말을 하던가 사원증이라도 빼고 말을 하면 몰라.
 
주위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불평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급기야 그는 “너는 어때?” 라며 내게 동의를 구하기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나도 힘들고 짜증나는 일 투성이므로 “아 뭐 응 그렇지 나도.” 정도의 대답을 해 주었는데, 그 대답이 그의 마음속 불길에 기름 같은걸 끼얹은건지 그는 우리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와 어째서 야근 수당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가 등에 대해서까지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갔다.
 
‘이 불평이 끝나기는 하는걸까….’
정신과 시간의 방에 처음 들어가 곤혹스러워 했던 손오공처럼 그의 툴툴거림을 처음 접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 때, 누군가 등뒤에서 S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나는 구세주를 보았다.
의문의 남자 : 야 S, 밥먹으러 가냐? 근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
S : 부… 부장님….
사색이 된 S의 얼굴로 보아 의문의 남자의 정체는 S와 같은 팀의 부장님인듯 했다. 그 부장님의 등장과 함께 지하철 역사 내에 생중계되던 S의 불평은 강제 종료되었고, 나는 S와 이별하여 마음 편히 지하철을 타러 갈 수 있었다. 부장님은 S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멀어져 가는 S의 뒷모습을 보며 유난히 그 등이 작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마음 속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것은 S에겐 비밀이다.


 
 
ⓒ 잘못 툴툴거리다간 이런 취급 받는다!
 

 
 
그날 S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식사만으로 예정되어 있던 자리가 술을 동반한 회식자리로 번졌다는 이야기는 접할 수 있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S의 불평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후 회사에서 만난 S는 지금 막 배럭에서 나온 마린처럼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의식적으로 회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피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역시 불평에도 때와 장소가 있다’고 느끼며, 이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이 S와 같은 불평 생중계에 비해 얼마나 안전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안전이 제일이다.
 
그런데 설마…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요즘 저도 자꾸 툴툴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 칼럼이 적들에게 적발되는 것은 아니겠지요?여러분 선처 부탁드립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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