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WHY?] 직장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직장생활 WHY?] 직장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낙관과 비관

우리의 삶은 예측과 선택으로 이어진다. 흐르는 대로 맞이하는 시간도 없진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래는 예측과 선택을 통해 열린다. 예를 들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 직업을 가졌을 때에 예측되는 상황에 따라 선택이 갈린다.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 말 것이낙 하는 고민도 같은 경로를 거친다. (욱!! 하는 마음에 무작정 사표를 던진 것이 아니라면) 회사를 그만둔 후에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 대한 예측을 거쳐 선택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예측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며, 그 선택에 따라 미래도 달라진다.

 

미래에 대한 전망에는 두 가지 큰 관점이 존재한다. 낙관주의비관주의다.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나 미래라는 같은 지점을 전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관점의 성격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일상에서 낙관적인 전망은 느낌에 근거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괜찮아,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말자. 어떻게 되겠지 뭐." 같은 말이 흔한 예다. 이런 말들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그저 그렇게 되리라 여기는 것뿐이다. 특히 정보의 양이 적을수록,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약할수록, 그리고 현실이 된 전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수록 낙관론은 느낌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 그런 경우 낙관적인 전망은 예측이나 예상이 아니라 단지 그러하리라는 느낌(感), 또는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기대나 희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반면에 비관적인 전망을 할 때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나쁘고, 내가 해봐서 알고, 당신이 안 해봐서 모르고, 국내 정치 상황이 어떻고, 국제 경제 상황이 어떻고 등등, 갖가지 이유들이 붙는다. 직장에서 어떤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의 경우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따위의 막연한 주장은 잘 없다.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느낌만으로 비관론을 펼쳤다가는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시죠?" 같은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래서 비관적 전망을 할 때는 유사한 아이디어의 실패 사례를 들거나 누가 할 것인가, 언제 할 것인가, 예산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따위의 현실적인 애로 사항을 근거로 삼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해 비관주의는 체계적이다. 그래서 기대, 희망 같은 감정적인 요소들을 근거로 삼은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를 이기기가 쉽지 않다. "직장을 그만둘까?" 하는 고민도 마찬가지다. 고민의 시작은 가볍고 긍정적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뭔가 불안하고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이며, 지금 그만두어야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요즘 어떠 어떠한 분야가 뜬다고 하는데 내가 하면 잘할 것 같고, 설마 지금 그만둔다고 굶어 죽기야 하겠냐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게 된다. '삘' 받아서 멀리 달려간 경우에는 새로운 직장에서 승승장구 하거나 성공한 사업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흐뭇해하기도 한다. 로또 1등 당첨과 무척이나 비슷하게 말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비관론

반면에 비관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힌다. 새로운 직장을 얻을 동안 생활비는 어디서 조달할 것이며, 부모님이나 배우자에게는 뭐라고 말할 것이며,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경력은 아까워서 어쩔 것이며, 하다못해 살고 있는 원룸의 월세와 자동차 할부금, 넣고 있던 보험, 붓고 있던 적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따위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이쯤 되면 일단 새로운 직장을 구해놓고 여기를 뜨자는 절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며칠 동안 짬짬이, 하지만 전에 없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구인 사이트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얼마 후에 거기에도 별거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회사 따위는 이승에 없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조금 더 버텨보자."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액면가로 비관론의 완승이다.

 

직장은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만큼 그만두거나 옮기기도 쉽지 않다. 퇴사야말로 직장인의 절대 권리지만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 권리는 값어치가 낮다. 주변을 둘러보면 취직, 퇴직, 이직을 척척 해내는 사람이 많다. 꼰대 과장 보기 싫다면서 과감하게 사표를 썼던 대리님은 한 달만에 재취업을 했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던 옆 부서 과장님은 더 큰 회사에 스카우트되어서 다음 중에 퇴사를 한단다. 대학 동기들을 만날 때마다 몇몇 친구들의 이직 소식이 빠지지 않고 들려온다. 이쯤 되면 아마도 내가 능력이 모자라서 지금 직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주변이 모든 현실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그저 본인이 희망하는 바라서 눈에 잘 들어오는 것뿐이다.

 

 

잡코리아가 2019년 상반기에 한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의 90.6%가 이직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직을 고민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이 중에 실제로 이직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32%로 10명 중에 3명이다. 이 수는 많다고도, 적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애당초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들을 보면 'OECD 국가 평균 이직률' 따위를 들먹이지만, 그런 것은 개인에게 큰 의미가 없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을 다니는 노동자나 짐바브웨에 사는 여행 가이드의 이직은 내 삶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저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을 다니기 싫은 마음을 이직이라는 현실적인 기대로 치환한 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삶이 처한 여러 사정 때문이지 당신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능력이 없어서 이직도 못하고, 가진 것이 없어서 쿨하게 퇴사도 못하는 처지에 낙담해 마음 상할 필요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차라리 머릿속의 비관론이 가슴속의 낙관론보다 좀 더 힘이 센 탓이라고 생각하자.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소렐은 "비관주의자는 체계적 사고를 한다."라고 말했다. 체계적 사고를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차라리 그런 능력을 낙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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