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똑똑한 상사가 좋은 이유

똑똑한 상사가 좋은 이유

 

대개 원하던 목표를 달리던 사람은 목표가 성취되면 당황한다.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책, 미디어만 봤기 때문. 미디어 욕하자는 게 아니라, 미디어 보고 자란 사람은 아무리 잠깐이더라도 당연히 영향 받는다. 디즈니에 열광하고 마블 향수에 젖는 건 님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 세대는 보통 다 그렇다. 해리 포터 세대도 그렇고 말이다. 각설하고 하려는 말은 나는 그 영화나 미디어 혹은 교육에서 '님들은 사회에서 잣같은 사람을 자주 만나요. 그럴 땐 개무시하세요' 같은 교육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나더러 후배들 앞에서 진로 교육 같은 걸 일회성으로 해주라고 요청한대도 내가 그런 말을 할 리는 만무하겠지만. 어쨌든 누군가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한다. '세상은 좋은 것 투성이겠지만 가끔 잣같은 게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 회사는 변태 때문에 그만 뒀고 저 회사도 변태 때문에 그만 뒀고 한 회사는 승진을 너무 빨리 해서 필드에서 더 뛰고 싶은 마음에 그만 뒀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 근데 이 모든 걸 내가 새로 입사하는 곳에 말할 필요 있을까 없을까. 당연히 아니올시다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고 섣불리 저런 말을 했다가는 드라마퀸으로 몰리기 쉬우며 내 손으로 나를 도마에 올리는 격이다. 여기, 님들이 심심할 때 뜯을 수 있는 관종거리가 있습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십쇼~ 하고 말이다. 게다가 승진 빨리 해서 그만 뒀다는 말은 일부 꼰대들의 열등감 혹은 이상한 심리를 건드릴 수 있으니 금물이다.

 

문제는 언제나 무능한 이로부터 온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내 친구는 이러저러어쩌구 과정 다 거친 사람이 어쩌구할 수가 있느냐 등의 말을 하며 누군가에게 놀라곤 했다. 나도 그랬다. 그래 그래 맞아. 그래도 그런 과정 어쩌구 저쩌구~~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뭐. 그 때 우리는 아기였지 뭐. 나이브했다는 거다. 지금도 나이브해서 문제일까. 나는 일을 하고 싶고 발전하고 싶을 뿐인데 무능한 상사를 만나면 그런 꿈은 쉽게 좌절된다. 어른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모난 돌이 정 맞고 가급적 큰 회사로 가라는 어른들의 말. 가급적 좋은 직업을 가지라는 어른들의 말. 그건 다~~~ 자아실혀도 자아실현이지만~~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다. 어차피 깨질 거면 똑똑한 놈한테 깨지는 게 백 번 나으니까.

 

앞선 브런치 글에 적은 적 있는 예전 모 일간지의 극보수 남사수는 내가 종종 떠올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참 잣같았지만 배울 것 투성이었던 사람이다. 참 사람이 말도 못하고 표현도 거지같이 해서 원망의 대상으로 쉽게 등극했지만 어쨌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한테 깨지고 우는 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이왕 배울 거면 그런 사람 밑에 있는 게 낫다. 어릴 때는 특히 더. , 앞선 글에도 있는 부장 이야기. 소처럼 일하는 후배가 있으면 걔를 밟는 게 아니라 걔를 철저히 이용하는 부장. 당시에 다른 부장들이 농담 삼아 말할 땐 왜 저래~~ 했지만 이젠 안다. 나는 이용당했다는 걸. ~ 이젠 알지만그래도 좋다. 지금 나이에 커리어 쌓지 언제 쌓아 하는 생각을 하니까. 어쨌든 많이 가르쳐주셨으니까. 에이씨, 적고 보니 그게 뭔 이용이야. 그게 맞는 거 아냐?

 

지금 회사에서 내가 배울 것은? 멍청한 선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법. 그러니까 참 웃긴 게 이 일을 하면서 배우는 건 좋게 말해선 사회생활이고 나쁘게 말해선 등신 되는 법이다. 가능성이 깎이는 걸 참는 법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혼란스럽다. 이 모든 시간을 낭비가 아닌 내게 도움되는 시간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자꾸 다른 걸 하려 한다. 회사 외적으로 말이다. 몇몇 님들에겐 싸가지 없이 들릴 지 모르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현 선배에게 배우는 글로는 바보가 되면 됐지. 좋게 말하면 둥글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내 날은 깎이고 무뎌지고 내 시간은 알 수 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 좋게 깍듯한 후배로 남으면서 내 밥그릇까지 챙기는 일은 거지같이 어렵다. 어디서든 막내는 그렇지만 그래도 막내를 열심히 하는 아이디어뱅크로 봐주는 부장들이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열등감 있는 사람의 밑에서 누구의 보호막도 없이 일하는 건 거지같고 거지같다.

 

사람은 스트레스가 없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고 행복하면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이상한 모드에 빠져버린 상사의 밑에 있는 것은 꽤나 유쾌하지 못하다. 구리다. 매일같이 지각에 자다 와서는 고개도 못 들고 사무실에 들어와 방금 온 체 연기하는 그 팀장. 매일같이 남자를 욕하면서 본인이 욕하는 모든 행동을 본인이 앞장서 하고 있는 그 팀장. 자기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는 선배들에겐 끽소리 못하고 내게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그 팀장. 선을 몇 번이고 그어줘야 하게 만드는 그 팀장. 선배들이 눈 앞에서 내 아이디어를 뺏어가도 눈치 못 챌 정도로(난 처음엔 심오한 뜻을 가지고 모른 체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정말 모른 거다) 멍청한 그 팀장. 남들이 자기에게 하는 말을 다 공격으로 오해하고 매번 쏘아대는 그 팀장. 이미 한 말을 두 번 세 번 되묻고 이해를 못해서 또 묻는(이것도 심오한 뜻이 있어서 모두에게 그러는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그냥 멍청한 거였다) 그 팀장. 팀장 단지 얼마 안 돼 고군분투하는 거구나 싶어 안쓰럽게 보던 우리를, 1년 만에 적으로 돌린 그 팀장. '별루다'…☆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https://brunch.co.kr/@gr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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