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일'이 아니라 '사람'이 질려버렸다.

'사람이 질리네요. 과장님부터 해서'

 

요즘 무슨 일 있냐는 과장님의 질문에 필터를 거치지 않고 대답을 해버렸다. 돌려서 얘기할 법도 한데 나라는 인간은 그러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한 건 아닌지 순간 움찔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주변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언제부턴가 썩어갔고, 그 썩은 냄새는 내 표정을 통해 주변에 전해졌을 터이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묵혀 놓은 고름을 이 때다 싶어 과장님을 향해 터뜨려 버렸다.

 

'일'만으로도 힘든데 언제부턴가 '사람에게 맞추는 일'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은 어찌하든 맺음이 있지만,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스스로를 깎고 잘라서 맞추는 수 밖엔 없다. 배려 없는 말, 불합리함의 강요, 개인을 죽여야만 하는 동료애의 강요 등... 자르고 또 잘라서 맞추려 애썼건만... 더 자르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새 살이 나기도 전에 잘라내기 바빴던 인내력은 더 이상 희생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 죽을 것 같다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환경과 사람은 지독히도 그대로다. 버티다 보면 저런 것쯤 별거 아니겠지, 가볍게 웃고 넘기는 시기가 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버텨 보았으나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물론 변한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계속 자르고 맞추고 하다 보니 어떤 부분에는 굳은살이 생겼고 그런 부분은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곳이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에 (그 사람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내 상처를 계속 건드리는 인간이 있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 동료에게도 피해가 갈 때가 있다. 상처는 딴 사람이 냈건만, 다른 사람이 잘못 건드려 봉변을 당하는 경우다. 말이 길어졌지만, 내가 말하는 '변한 게 없다' 함은 이렇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또는 그렇게 상처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래도 개겼던 게 효과는 있었나 보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내가 마치 죄인인 것 같았다. 나는 항상 팀 환경에 불만이 많은 인간이었고, 팀에 맞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이 들어와서 참 여러 사람이 고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팀 내에서 나의 존재가 마치 '죄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불만이 많은 인간일까' 아니면 '이 환경이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것일까' 항상 고민이 많았었고, 과장님께 열변을 토한 그 날은 유독 불만이 높던 시기였다.

 

"사람이 질리네요. 과장님부터 해서 A과장, B과장, 현장 사람들 까지."

 

"나야 뭐, 하루 이틀이냐... 그래, 그런 시기가 있지."

 

"진짜 너무 질리는 것 같아요. 사람이며, 팀 환경이며... 인턴들이 입사 안 한다며 나간 이유가 있죠."

 

"야 그건 나도 좀 충격이었다. 지금 세대랑 생각 차이가 이렇게 까지 날 줄은 몰랐다."

 

필터링 없이 얘기했건만, 생각보다 순순히 인정하는 과장님 모습에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이 얘기를 할까 저 얘기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과장님이 말을 더 이어갔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진짜 많이 변했다 진짜로."

"예전에는 퇴근하기 전에 (전)팀장님 한테 '퇴근하겠습니다' 보고 하고 퇴근했어. 그러면 (전)팀장님이 '그 일은 다했어?' 물어보시는데 다 못해서 대답 못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말도 안 해. 그냥 끊어."

"설비 터진 날은 저녁 먹고 난 다음부터 회의 시작이었어. 그 일이랑 상관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어디있노. 상관없어도 같이 있어야 되지."

"휴가는 말도 못 꺼냈다 진짜."

 

"... 그런가요... 그런데 너무 옛날 얘기하시는 거 아닌가요 과장님. ㅎㅎ"

 

"야 그게 불과 몇 년 전 얘기다. 10년도 안됐어. 그래도 그때 비하면 엄청 변하지 않았나 ㅎㅎ"

 

"그런가요... ㅎ."

 

"근데.... 사실 그렇게 변한 데는 니 역할이 컸다."

 

"진짜요? ㅎㅎ."

 

"그래 ㅎㅎ. 진짜 우리 팀 전부 너 퇴사할 줄 알았다. 진짜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 생각했지. 그리고 이번에 인턴 둘 다 안 온다고 했을 때는 충격이 컸지. 진짜 변해야 될 것 같더라."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았었어. 스스로는 참 많이 변하고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생각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우리도 노력 안 하는 거 아니데이."

 

"그래도 저 나름 열심히 개겼는데 뭐 상같은거 안 주시나요?ㅎㅎ"

 

"알겠다 임마. 기다려 봐 ㅋㅋㅋ"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책임

 

회사 내 가장 빡센 부서 1,2위에는 항상 우리 부서가 있었다. 신입 연수 때 힘든 부서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었고, 나의 소속이 공포의 1,2위 팀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랬건만, 난 우리 팀으로 선택당했다. 다른 부서는 그래도 신입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건만, 우리 부서는 회사 내 별동대 같은 부서여서 아직도 내가 막내다.

 

30대 들어 결혼을 하고, 또 부모님의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이제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의 범위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도 포함된다는 것(그리 할 수 밖엔 없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아무리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지라도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이 곳에 원해서 온 것이 아닐 테고, 워낙 스트레스를 받으니 말이 거칠어질 테고, 자기 일도 힘들 테니 애매한 일은 만만한 사람에게(그건 바로 나!!) 떠넘길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내가 사람이 질려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바뀔 수 없는 '환경'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누군가 나를 위안한다고

'버티다 보면 좋은 시절이 온다.'라고 하지만 '그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라.'지만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골병든다는.'말이 더 와 닿는 요즘이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삐딱선을 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그나마 과장님이 내 말을 받아주셨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라면 위안이겠다. 글로는 쿨한 척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내년에 내가 이 부서에 남아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결국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환경을 바꿀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내년 부서이동 요청을 한 것이 유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작가소개>
직장에서는 열일하고 퇴근 후에는 꿍꿍이(꿈)를 고민하는 직장인. 30대에 카페운영, 출간작가, 금융 (준)전문가가 되고픈 꿈이 있어요. 그 꿍꿍이를 그려가는 자취를 글로 씁니다.

작가 브런치 : https://brunch.co.kr/@kwj3944
#직장인 #꿍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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