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싸이코(PSYCHO)

싸이코(PSYCHO)

 

웃고 떠든다. 먹는다. 단 걸 찾는다. 걷는다. 몇 시간씩이고 걷는다. 지하철을 탄다. 사진을 찍는다. 영상도 찍는다. 음악을 듣는다. 뭐든 한다. 청소를 하고 옛능 따위를 틀어 둔다. 그렇게 웃음으로 공허를 채우려 한다. 아픈 몸을 때로 치유하던 옛능도 들지 않을 때는 바로, 고통스러운 새벽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밤이 두려웠다. 날이 밝으면 비로소 삶을 느꼈다. 살아있음을 밤으로 증명해 내던 내게 밤은 언젠가부터 죽어 있는 시간이 되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라도, 내 마음은 공허하게 말라갔고 죽어 있었다. 인정하기 싫어서 뭐든 했다. 일을 벌이고 해내고 웃었다. 그래도 막을 수 없는 건 밤이 주는 죽음에 대한 황홀한 환상이었다.

 

언젠가 선배는 내게 말했다. "그 시간, 그것만 지나면 된다." 우리는 남의 일인 양 그런 얘기를 두어 마디 주고 받다가 까르르 웃었다. "선배 왜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해요? 혹시?" 하는 따위의 뉘앙스로 우리는 서로를 놀렸다. 선배가 그 말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누구든 그런 유혹의 시간을 견딘다는 것쯤은, 이젠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다 같지 않으니, 그런 고민을 입 밖으로 내어 공유해 주는 사람이 어쩐지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종종 선배를 살피면 선배는 밝은 얼굴로 "무서워서 뭔 말도 못하겠네!" 하고 손사레를 친다. 웃는다, 우린.

 

어쩌면 사는 게 싸이코 같은 건 아닐까. 단어가 극단적이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여성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노래 싸이코를 들으면서 내가 밤의 유혹을 떨쳐내고 있기 때문에 쓴다. 나는 근래 들어 조금 더 그런 황홀에 들고 있다. 정말 누가 귓가에 속삭이는 게 아닐까 싶게, 어떠한 강렬한 형태의 유혹을 종종 느꼈다. 몇 번이고 일기를 쓰며 떨치거나 다른 짓거리를 무엇이든 해내며 떨쳐낸다. 대체로 그것은 뭐든 하면 사라지거나 사라지는 체라도 해 주는 대상이라, 낮엔 잘 찾아오진 않는다. 밤이 두려워진 건 그가 자꾸 찾아오면서부터다. 이 공허를 채우는 나의 사랑하는 것들이 없다면, 나는 어떠한 황홀, 혹은 선배 표현대로 "그 순간 참으면 지나갈 것"에 홀려 무슨 짓이든 저지르고 말리라는 생각이, 근래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히려 강한 긍정의 표시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에 그조차 사치 혹은 미뤄야 할 과제 따위의 것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나는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해 왔다. 지금에서야 유행 문장처럼 되어버린 '나는 29살에 죽기로 결심했다' 따위의 것을, 책이 나오기도 전인 10대 후반부터 계속해서 꿈꿔왔으니, 그것은 젊은 날의 사춘기 혹은 치기라고 여기기엔 어쩐지 뭔가의 꾸준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환상은, 인간을 계속 살게도 하고, 결국은 그 환상에 취하게도 하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고, 나는 마침내 갑자기 고백하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면서도 너무 지쳐 버려서 말라 비틀어진 수건처럼 나는, 삶을 싸이코처럼, 좋아죽는 바보처럼 대하면서 없이는 기력 없이 자빠지면서도, 마침내 언젠가는 기어이 놓을 것처럼 굴고 있는 것이다.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이 밤은 잠시나마 인간에게 그런 환상 따위를 심어 놓는 것인데, 나는 그 생각이 들면 지독하게 슬퍼져셔는, 그 생각에 안 빠져 들려고 뭔든 한다. 대체로 그 대상은 일인데, 그것은 내 가치관과 일맥상통하는 행위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학업 또는 일만큼 내게 안정 혹은 비교적 예상 가능한 결과물을 내어준 대상이 없었기에, 내 애착의 대상은, 그저 일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삶을 노래하면서 레드벨벳의 싸이코를 운운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어의 자극적인 면을 택하기보다는, 그들이 노래하듯, 너무나 사랑해서 꼭 만일이라도 누군가 본다면 농담 삼아 싸이코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실은 죽음에 대한 달콤한 환상에 너무나도 오랜 세월 취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노래하듯, 결국은 삶을 부서질듯 몸으로 부딪히며 혹은 부딪치며 영위해 나가다가도, 결국은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그것은 너무나 지당해서 실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라고, 이 밤을 새워 가면서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밤만 새워 내면 별 일 아닌 것들에 대하여, 이 밤이 지나면 가버릴 우울과 감정의 천착 등에 대하여, 그런 슬픈 마음을 안고 자꾸만 나를 갉아 먹지 말라고 나는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꾸만 그 노래는, 내게 삶을 살라고 손짓하는 사이렌 같은 유혹의 소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계속 해서 잠을 못 자면서도 이 노래 따위로 내 정신을 충전하며 삶을 제법 잘 영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온몸으로 삶을 느끼면서,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노래하면서, 고군분투하면서도 결국은 삶을 사랑하면서 계속 품어나갈 것이라고 그리 확신하며 내게 자꾸만 괜찮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아씨, 너 진짜 괜찮잖아.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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