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애매한 당신

애매한 당신

 

선배는 웃으면서 말했다. ", 요즘은 무슨 말을 못해. 인터넷이 너무 발달하고. 남자는 원래 여자를 좋아하고 야한 얘기도 하고 그래. 그걸 굳이 캐서 듣고는 대자보를 붙이고 뭐 어쩌고... 애들 보니까 성별 다른 애들끼리는 말을 안 하는 모양이더라고." 선배의 이야기는 대개 이렇게 끝난다. "대개 옛날에는 한 사람의 흠을 대중이 잘 볼 수 없었거든. 그러니까 사회적 지도자도 있고 사람들은 그 사람 말을 믿고 따랐지. 지금은 그런 지성이 없으니 세상이 영..." 선배는 말을 이었다. "XX 어떻게 생각하니. 아니 그런 걸 굳이 다 캐서 말을 하고 그러면 그건 아니지~" 선배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자식에게로 간다. "우리 XXXX에서 공부하고 있어~. XX에서 살라고 하니까 그건 싫다네. 애 어릴 때부터 모아준 돈이 글쎄 벌써 XXX이야."

 

선배는 좋은 분이다. 사람 참 좋다. 소탈하고 일 열심히 하는 사람, 나는 좋아한다. 다만 선배는 감수성은 조금 떨어지며 이른바 '강남 좌파'. 나는 이러한 부류 혹은 일각서 붙이는 이름에 대해 호불호를 말할 생각은 1도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은 든다. 어린 시절부터, 도움 하나 없이 사느라 각박했다가, 겨우 돈 모아 1인분의 공간을 내 힘으로 모은 나에게, 그 선배가 하는 "네가 모은 거 맞느냐"거나 "보호자가 줬느냐" 따위의 흘러 가는 말은 어쩐지 마음에 콕 박힐 때가 있다. 콕 박힌 건 그냥 집 오는 길에, 약속에서 밥 먹으며 툴툴 뽑혀 꿀렁꿀렁 어딘가로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꼭 오늘같은 밤은. 적당한 결핍과 긴장, 주말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지만 막상 선택지가 없으니 그저 웃고 마는 오늘같은 밤은, 그냥 그런 말, 일기에 툭 떨구고 가려고.

 

집에서 숙제 한 번 도움 안 받아본 사람 없다는 말 따위가, 나는 왜 이리 아플까. 오픈북 테스트라는둥 누구나 그런다는둥. 사람은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살 수 없다고들 하더니, 저마다의 흠을 대충 서로 눈치껏 감춰 주는 물이 아니라서 그랬던 거라는 걸, 그냥 원래 알던 건데, 그냥 또 안다. 아직도 세상에 대한 어떤 기대치가 있었는지, 멍청한 건지, 그냥 그런 생각을 찰나에 하곤 한다. 머리 싸고 고뇌하는 건 아니고, 그냥 웃겨서. 웃을 순 있잖아. 누구나 한다는 오만한 이야기. 누구나 그렇다는 과한 추측들. 같은 상황서도 안 하는 이가 있는데, 그냥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인가 보다. 왜 안 해? 바보야? 왜 안 하고 난리야? 기회 혹은 지식이 있었으면 했을 걸, 왜 고고한 척이야? 그러한 잔인하고, 무책임한 질문들.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고 깨끗한(은 그냥 비유다. 위에 물이라고 적는 바람에... 가치 판단 없다) 이를 꺾으려는 질문들. 목적이 다분한 것들.

 

나는 그냥 다시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렇게나 마음에 잔상이 남아서는 그냥 웃고 한편으로는 허무하다가, 어른이 된다는 건 다 그런 걸 받아들이고 모른 체 삼키고는, 아파하는 걸 티도 내서는 안 될, 어쩌면 오늘의 고민이 그 때가 되면 웃긴 게 될, 그런 삶이라는 것을.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니, 나는 가장 젊은 오늘만큼은, 그냥 소리내어, 그런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 통탄, 아니, 거창하네. 마음이 콕콕 다친다는 것을, 그렇게 한 발짝 더 사람이 싫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그냥 적어나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회적 자아는 늘 행복하게 웃으며 말한다. 사람은 다 다르니 이해하라고. 세상에 정의란 없다고. 아는 것을, 굳이 적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혹은 착하게 살아 그래도 성공한다는 증명을 해내고 싶다는, 어떠한 욕심에 아직도 단단히 빠져 있는 것이다.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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