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WHY?] 자신을 핵심인재라고 생각하는 이유

[직장생활 WHY?] 자신을 핵심인재라고 생각하는 이유

 

핵심인재는 바로 나

직장인들은 능력과 성과로 가치가 매겨진다. 대부분의 직장은 성과가 곧 능력이며 능력이 뛰어날수록 성과도 높다는 간단한 공식으로 직장인들을 평가한다. 직장인은 이런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급여, 대우, 지위, 권한이 달라지고 급기야 생존 여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우수한 인재, 조직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야박하게도 핵심인재의 타이틀을 남발하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안다. 지금 당장 없어지면 조직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인재가 주변에 몇 명이나 있는가?

 

국가통계포털 KOSIS의 통계 자료를 보면 전체 인력 대비 핵심인재의 비율은 11.7%에 불과하다. 업종과 기업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금융계의 소규모 기업의 15.3%를 제외하면 대부분 10% 남짓이며 몇몇은 그 보다 낮은 수치를 보인다. 반면에 직장인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잡코리아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중 73.3%가 자신을 회사의 핵심인재라고 답했다. 벼룩시장이 실시한 설문에서는 76.4%가 자신을 핵심인재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겨우 10명 중에서 1명 정도만이 핵심인재인데 직장인들 10명 중 7명이 자신을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나 역시 한때는 나 자신을 조직의 핵심인재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가 설문지를 들이밀었다면 핵심인재라는 답변에 굵고 진하게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을 것이다. 꽤 오랫동안 "나 없이 회사가 돌아갈 리 없지."라며 건방을 떨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름대로 불의에 항거하는 의미를 부여한)  사표를 던지고 난 후에 산산이 깨졌다. 그 회사는 나의 믿음과는 달리 나의 부재가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과신 오류와 착각적 우월감

이런 착각은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코넬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와 듀크대학교 경제ㆍ사회학 교수인 필립 쿡(Philip J. Cook)이 쓴 『승자독식사회』에 등장하는 미국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산성을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노동자들 중 77%가 자신은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노동자의 90% 이상이 자신을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더 생산적이라고 답했다. 이런 후한 자기 평가는 직업인들의 세계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다. 미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00만 명(100명이 아니다!)을 조사했더니 70% 이상이 자신은 평균 이상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또, 전미대학체육협회 NCAA 1부 리그에 속하는 대학에서 농구를 하는 선수들 중 60% 이상이 자신이 훗날 NBA에서 뛸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NCAA 1부 리그 출신 중에 5% 정도만이 NBA 선수가 된다. 이러한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과신 오류', '착각적 우월감(기만적 우월감, illusionary superiority)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연구들을 보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실제보다도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정 집단에 속해 있을 때에도 집단 전체의 평균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가 운전 실력에 관한 질문이다. 사람들에게 운전을 잘하느냐고 물어보면 90%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하며, 평균보다 잘하느냐고 물어봐도 비슷한 비율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온다고 한다. 운전을 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것은 이해 못할 것까지야 없다. 하지만 평균보다 더 잘하냐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평균적인 운전 실력'은 일반인 입장에서 알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답이 나온다면, 그 대답 역시 오류일 수밖에 없다.

 

과신 오류와  착각적 우월감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평균보다는 나은(better-than-average)' 휴리스틱(의사결정의 단순화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는 자신의 능력이나 행동, 특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 개념으로 평가받는 사회적 대상에 자신을 동화시키려는 경향'이 과신 오류를 불러온다는 해석이다. 한편에서는 자신의 능력, 특성 및 행동의 중요성과 의미가 남들의 그것보다 크다고 여기는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으며, 자신과 남을 비교할 때 그 중심(기준)을 자신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능력이나 특성의 비중을 크게 두는 경향인 초점주의(Focalism)를 과신 오류의 메커니즘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또,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 자신의 강점을 다른 사람의 약점과 비교하는 선택적 채용(Selective recruitment), 복잡하고 어수선한 객관적인 증거들을 주관적인 추정으로 판단해 다른 사람에 대해 보수적인 편향을 갖게 되는 '어수선한 정신적 정보처리(Noisy mental information processing)'도 과신 오류와 착각적 우월감의 해석에 동원된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잘 나간다는 세 명의 컨설턴트가 함께 쓴 『허슬, 멈추지 않는 추진력의 비밀』이라는 책에서는 착각적 우월감을 심리적 방어기제와 연결 지어 설명한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스킬이나 행동에 있어 실제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를 속임으로써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려는 경향을 일컫는다. 진정한 재능에 눈멀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심리적 함정이다. 즉, 당신의 운전 실력이 남들보다 형편없다는 불편한 사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감정코칭 전문가인 차희연 작가는 책 『매일 10분 마음수업』에서 열등감으로 과신을 해석한다. "자존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되었지만 과신의 오류의 다른 말이 바로 '기만적 우월감'이지요.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열등감이 높은 사람이 우월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자존감으로 포장된 우월감의 다른 이름은 열등감입니다."

 

해석이 많다는 것은 단일한 논리로 해석이 안된다는 의미다. 과신 오류와 착각적 우월감에 대한 해석의 여러 갈래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잘 보여준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각자 해석의 틀을 들이대고 누군가에게는 그 해석이 제대로 맞아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평균보다 낫다는 휴리스틱, 자기중심적 비교, 선택적인 정보의 채용, 복잡한 정보를 무시한 추정, 열등감 감추기와 자기 보호 같은 것들이 모두 작용해서 자기 자신을 후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 모든 해석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제각각인 이런 해석들에도 공통점이 있다. 근거 없이 자신을 과도하게 믿는 낙관적 편향, 자신을 합리화하는 휴리스틱,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기제 같은 것들은 사람을 옹졸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이 사람들을 그런 존재로 부각하기 위해 그토록 고생해 가며 과신과 기만적인 우월감을 해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상의 올바른 해석이 문제를 푸는 첫 번째 걸음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그들의 해석이 고약하다고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직장인'이라면 시각을 달리 가져야 한다. 과연 직장인이 자신을 그토록 '과신'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만'할 처지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저어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을 철석같이 믿기에는 확실성이 너무 낮은 세계에 살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자신을 믿어도 남이 믿어주지 않으면, 인정해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 직장생활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과 남을 기만할 정도로 몰염치하지는 않으며 기만의 부정적 대가를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다. 남는 해석은 별 게 없다. 모르면 그럴 수 있다. 직장인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닝-크루거 효과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른다. 아마 특정한 기준이나 비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평가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능력 있는 직장인입니까?" "당신은 조직에서 중요한 인재입니까?" 같은 질문에는 '감'으로 밖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인사평가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인사평가를 신뢰하는 직장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앙일보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인사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직장인이 75%에 이른다. 직장생활이라는 범위 안에서 그나마 객관적이라는 인사평가마저 믿지 않으니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자의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의적 판단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전제에서 이루어진다.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는 실험을 통해 숙련된 사람일수록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숙련된 사람은 일하는 분야의 광대함, 복잡함 따위를 충분히 알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반면에 숙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로 여긴다. 그래서 자신감이 넘치며 그런 자신감을 배경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숙련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한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빤하다. 아무리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조직 안에서는 특정 분야만 맡아서 하는 게 직장인이다. 자신의 분야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조직 안에서만이다. 대외적으로 상대 평가를 받을 일도 적고, 내부적인 상대 평가도 비슷하거나 같은 일을 하는 몇몇의 동료 직원들이 대상일 뿐이다. 결국 실질적인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제한된 범위 안에 있는 자신을 평가하면서 긍지와 자신감을 자기 평가 점수에 반영하게 된다. 이것은 과한 자신감도,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기만도 아니다. 그냥 자신을 그렇게 믿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과신의 늪, 기만적 우월감의 재앙 같은 말을 써가며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사람에게 경고를 보낸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자신을 믿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생각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본인에게 실망을 주는 것 말고는 자신에 대한 후한 평가가 별다른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다. 직장인들의 경우 비록 평가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거나 시스템의 평가가 자기 평가와 편차가 크다고 해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시스템의 평가를 구분하는 정도는 어느 직장인이나 한다.

 

오히려 이런 '근자감'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쉘비 테일러(Shelley E. Taylor) 교수와 워싱턴 대학교의 조너던 브라운(Jonathon D. Brown) 교수는 정신 건강이 좋은 사람일수록 착각적 우월감, 통제의 환상, 낙관주의 편견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 결과는 심리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소심하거나 우울한 성격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이러한 편견을 유도하여 치료하는 방법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책임이 따르는 큰 일을 자기 과신과 착각적 우월감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과신이나 얕은 자부심 정도는 가져도 상관없다. 그런 것 마저도 없으면 무슨 힘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겠는가? 다만, 한 자리에 머무른 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는 생각은 버리는 편이 어쨌든 낫다. 한 걸음 나아가는 게 귀찮아서 그냥 "나는 나의 능력을 믿어."라고 하는 것은 게으름일 뿐이다. 게으름은 그나마 있는 능력도 갉아먹는다. 그것은 과신과 착각적 우월감에 먹히는 꼴이다. 과신과 착각적 우월감에도 부지런함을 달아두어야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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