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WHY?] 오피스빌런 No.1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들

[직장생활 WHY?] 오피스빌런 No.1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들

 

No.1 오피스빌런

'오피스빌런(office villain)'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회사, 사무실을 뜻하는 '오피스'와 악당을 뜻하는 '빌런'어 합성어다. 오피스빌런은 회사와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굳이 해석하면 사무실의 악당쯤 된다. 사무실의 악당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직장이라는 곳이 생겨날 때부터 존재해왔다. 편을 가르고 싸움을 조장하는 사람, 자신의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사람, 남의 공을 빼앗는 사람,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자기감정만 앞세우는 사람, 자기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 등 유형도 많다. 다만 그 모든 유형들을 한꺼번에 이르는 말은 오피스빌런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많고 많은 오피스빌런 중에 어떤 유형이 가장 최악일까?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에 따르면 최악의 오피스빌런은 '책임회피형'이었다.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이런 설문에는 책임을 회피하는 유형이 항상 1위를 도맡아왔다. 직장은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이 항상 남는 곳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책임을 벗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억지로 책임을 넘겨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공정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은 무척 예민하다. 공정에 관한 문제는 대부분 이익과 손해가 걸려 있다. 거기에 더해 손실을 이익보다 더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에 불공정에 대해서는 특히나 불쾌하게 생각하게 된다. 책임을 회피하는 유형이 민폐 끼치는 유형 중에서도 최악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다.

 

책임 회피의 수법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단순히 책임에서 벗어나기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이다. 책임에서 벗어나는 대표적인 수법은 변명과 핑계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었다는 사설을 늘어놓으며 책임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것이다.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책임을 덜 지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옹졸하고 치사한 전략이다. 사실 직장생활에서 이런 변명과 핑계는 일상적이다. 그저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수준으로 이해되는 편이라 이 정도로 해서는 오피스빌런으로 대접받기에 모자람이 있다.

 

은근슬쩍 발을 빼는 것도 책임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쓰인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안 될 것 같았어요.", "사실 이렇게 될 줄 예상은 했습니다." 같은 말은 하는 경우가 발을 빼는 수법에 속한다. 이 말은 "처음부터 안 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해야 한다니까 한 것이니 책임을 크게 묻지 말아 달라. 되지도 않는 일 시켜놓고 나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라는 의미다. 때에 따라서는 아예 처음부터 이런 전제를 깔아 두는 경우도 있다. "좋으실 대로 결정하세요.", "아마 그렇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 것도 같네요." 같은 식으로 자신을 결정의 주체자가 아닌 상황으로 만들어 두면 나중에 일을 그르치더라도 책임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구실이 생기는 것이다. 발을 빼거나 발을 미리 빼두는 것은 변명과 핑계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수법이다. 다만 교활하고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책임을 회피하는 다른 한 가지 방향인 책임 전가에 비하면 변명이나 발 빼기는 덜 해로운 편이다. 변명이나 발빼기와는 달리 책임 전가는 반드시 선량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수법도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방법이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 누군가에 돌아가도록 만드는 '거짓말'이다. 예를 들면 서류를 받아놓고서도 못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료를 전달하지도 않고서 전달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렇게 말하고서는 저렇게 말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식이다. 특히 흔적을 남길 수 없어 입증이 어려운 일에서는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에 거짓말만큼 요긴한 것도 없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뻔뻔하게 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식으로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비난'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선제공격이다. 나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으며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상황의 세세한 부분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난받는 사람이 그럴만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다시 말해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책임질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비난받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수법이다. 여기에 과장과 왜곡, 거짓말까지 동원되면 분위기를 먼저 장악한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지위나 권한을 이용해 책임을 강제하는 수법도 있다. 이 수법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쓰인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본인이 결정하고 책임질 일을 실무자, 혹은 부하직원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보통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같은 말로 시작을 해서 '너의 책임'이라는 전제를 만든다. 왜 '너의 책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는 말로 압박을 가한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임질 일을 저지른 사람이 된다. 일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상사의 결정이나 지시에 충실히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위와 권한에 눌려서 쉽게 반박을 하지도 못하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 여기에 거짓말이나 비난 같은 방법까지 더해지면 피할 길은 없다고 보면 된다.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의식으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직장인들 눈에는 의아하게만 보인다. 잘못이나 실패를 전혀 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직장인이 일을 하면서 실패를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 일상적인데 왜 그것을 피하려고만 할까? 더구나 직장인으로서 짊어진 책임이라는 것이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로 과중한 것도 아니고 책임을 회피한다고 해서 잘못이나 실패를 완전하게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임기응변에 가까운 책임 회피에 전전긍긍하는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심리학자들은 책임 회피의 동기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자신감 부족이다. 자신이 한 일, 자신으로 인해 생긴 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곧 잘못이나 실패에 따르는 열등감과 패배감, 수치심 같은 심리적 불편함도 감수한다는 뜻이다. 결국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은 심리적 불편함을 감수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잘못이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회관계에 있어 암묵적인 규범이나 마찬가지다. 심리적 불편함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기본적인 규범조차 지키지 않는 것은 정서적 역량의 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한 책임이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두 번째 동기다. 책임은 당사자의 역량 범위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역량의 범위를 넘어서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책임의 형태가 가혹한 수준의 페널티(벌칙) 일 때는 부담이 두려움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신입 사원에게 참가자 10만 명짜리 이벤트를 기획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그 신입 사원은 집채만 한 바윗돌에 짓눌리는 듯한 부담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벤트가 실패하면 퇴사로 책임지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도망치고 싶어 질 것이다.

 

책임 회피의 세 번째 동기는 개인의 약한 윤리 체계다.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윤리 체계다. 그런데 그 윤리 체계가 약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책임 회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책임을 진다'라는 개념을 몰라서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윤리 체계에 기반해서 판단한다. 그 윤리 체계가 허술하고 약하면 책임 회피는 어렵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동기에 의한 책임 회피는 직장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구구절절한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고 책임에서 발을 뺄 근거를 만드는 것은 책임을 짊어질 자신감이 없어서다. 잠수를 타거나 급기야 퇴사까지 하는 경우는 책임의 부담이 너무 과중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윤리 체계의 허약함이 원인이다.

 

이유와 원인은 다양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 다시 말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부당하고 불공정하지 않은 이상 행동의 결과에 대해 부담을 져야 한다. 그것이 사회생활의 기본 양식이다. 예외는 아직 책임을 짊어질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뿐이다. 직장생활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이 어떤 피해를 주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직장은 그 정도는 이미 다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책임 회피에 골몰하고 있거나, 무모하게 달아나려 하거나, 책임 회피를 부끄럽지 않은 일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결국 자신의 미성숙함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어린아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세상 어디에도 어린아이를 위한 직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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