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이야 울지 마라

'아이야 울지 마라'

 

오롯한 내 생각을 물어 주는 이를 만난 기억은 손에 꼽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안에 대해 어떤 각도기를 들고 있는지 등을 순간만큼은 집중해서 물어 주는 이를 만난 일은 살면서 몇 번 없었다. 내가 익힌 건 사람은 타인의 의견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서로의 대화에 진심이 없는 순간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삶 속에 내가 없다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나는 어른이 돼 그러려니 하는 연습에 익숙해졌다. 가끔 만나는 내 의견을 묻는 이가 두려운 건 그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을 믿고 다 털어 놓을까봐 두렵다. 결말은 나만 상처받는 일이니까. 내 의견을 자꾸 묻고 살아온 일을 궁금해 하는 사람을 만나면 두렵다. 내가 기대하고 의지하기 시작할까봐 두려워서 속으로는 어쩔 줄 모른다. 순간을 모면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될까봐.

 

사랑이라는 이름을 한 것을 할 때 내 의견을 궁금해 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대부분 입을 다물었다. 부득이 입을 열어야 할 땐 그들이 듣고 싶어 할 선까지만 말했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딱 질색이었다. 섭섭해 하거나 오해를 부를지언정 그게 나았다. 상처야 인간관계서 늘 생기는 일이니 내 얘기를 않고 상처받는 일이 나를 지키기 쉬웠다. 받아들일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무언의 확신은 내 안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궁금했다. 말을 하면 누군가는 들어줄까. 욕심이다. 들어줄 의무 없는 귀들에게 왜 피해를 주려는 거야. 나를 다독였다. 홀로 감수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만 살아갈 운명인가 보다.

 

삶은 알을 깨는 일의 연속이다. 긴 말 할 것도 없다.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닐 것을 왜 왈가왈부하는가. 나는 두렵다. 일기를 쓰는 일이 최초에 두려웠듯 내 얘기를 궁금해 하는 이를 만나면 두렵다. 남의 상처는 재단거리가 되기 쉽다. 인간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겪은 인간의 모습은 대개 잔인했다. 흠이 있는 인간에겐 더 잔인했다. 아무 흔적 남기지 않고 살다 가고 싶다고 강박처럼 나를 제한했던 모습은 나를 지키겠다고 고군분투한 결과물이다.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이해해줄 사람 아무도 없다. 필요하지 않다.

 

자고 나면 흩어질 가짜 관심에 대해. 주절거리고 순간을 흩뿌리는 행위는 얼마나 가벼운가. 그런 순간으로 점철된 시간은 얼마나 무용한가. 멍청한 생각으로 당연한 선을 그었을 일들에 대해 나는 삶을 조금은 낭비하고 싶다는 정신 못차리는 주문에 취해서 가짜 도피처를 찾는 것이다. 억지로 실수도 하고 시련도 만드는 일은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합리화를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똥글을 싸지르러 일기장에 들어온 건 불쑥 오는 우울을 떨치려는 행위다. 나를 위로하는 최선의 행위는 일기를 쓰며 내 안에 있는 아이를 달래는 일이다. 십수년 받은 상처에 대한 사과나 치유를 받지 못해 잔뜩 속이 상해 틈만 나면 일을 저지르려는 아이를 다독여 울리지 않는 일이다. 걔가 울면 내 전체가 무너지니까 막는 게 최선이다. 걔를 진정시키지 못해 허덕이는 일은 평생을 지속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누구에게 짊어지라고 말을 하나. 하고 나서 무슨 상처를 받으려고 그런 말을 하나. 낭만주의자도 아니고. 됐다. 집어치워.

 

감상에 빠져서 고백하건대 여유있는 이들의 대열에 끼려는 건 힘든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이 충만했던 것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연기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 연기를 계속 해나가야 할 때는 더 힘든 일이다. 표면적으로 함께 하는 관계서는 힘든 일이 아니다. 말을 않으면 대개 사랑이 충만한 사람으로 오해들을 하니 내버려 둔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언제나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가 사랑이 충만한 건 그래야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받는 사랑이 없으니 주는 일이라도 해야 내가 풍족해지기 때문이다. 내민 손을 잡는 건 그래야 상대가 무안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내가 받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뿐이다. '딥해지면' 싫다. 거부감부터 든다.

 

마음의 균열은 이상한 데서 오기 시작한다. 내 안에 있는 어린 아이가 왜 원래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주고받고 긍정적인 체 삶을 사냐고 딴지를 걸어오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모든 걸 행복하게 봐야 했다. 내 각도기는 극한에서 최대 장점을 발휘한다. 내겐 확신이 있다. 어떠한 고난에서도 나는 냉정하게 길을 걸어 나갈 거라는 확신과 그 실천이 나를 살려 왔다. 어린 애는 최근 들어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네가 뭔데 나를 없던 척 하느냐. 그 마음은 사라질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평생을 그 애를 돌보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안다. 늘 밤이 괴로우리라는 걸 안다. 완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일기장에 와서 끄적이는 걸 보니 시간이 더 필요한 거겠지.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헛소리를 끄적이는가. 됐다 그만 해라. '고만 딥해져라'.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https://brunch.co.kr/@gr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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