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패키지여행 같은 인생

그런 인생이 즐거울 리 없다.

 

난 패키지여행을 싫어한다.

 

모든 패키지여행이 그렇지는 않지만, 도대체 다른 나라에 놀러 가서 까지 잠을 줄여서 새벽부터 밤까지 돌아다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가족여행으로 중국 태항산으로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다. 과연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릴 만큼 멋지고 웅장했다. 하지만 워낙에 땅이 넓고 포인트 간 거리가 먼 지라 이동을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서 밤 9시쯤 숙소에 들어오곤 했다. 출국 전날은 5성급 호텔에 묵게 되었지만 그날도 변함없이 들어오기 바쁘게 씻고 자고, 일정을 맞추느라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그 짓을 5일 동안 하고 나니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난 대체 왜 여름휴가마저 숨도 못 쉬는 일정을 소화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잠만 자고 갈 거라면 대체 5성급 호텔에는 왜 묵었걸까... 취업 후 가족과 해외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적이 몇 번 있지만, 사실 패키지여행은 다녀올 때마다 참 '남는 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관광지를 갔던 기억은 있지만, 그곳에 있었던 추억과 행복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여행을 가면 어떤 목적지에 갔다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곳을 찾아갔는지가 기억에 남을 때가 많다. 물론 멋진 풍경, 유적지, 세계적인 관광지... 좋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 기억 속에는 그런 관광지보다 그곳에서 본 밤하늘, 기심에 가본 한적한 골목길,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들어간 식당, 이미 배가 부르지만 너무 맛있어 보여 굳이 사 먹은 거리 음식, 분위기에 취해 머물렀던 술집, 그곳에서의 맥주 한 잔,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한 인연 그런 것들이 나만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행복과 목적지가 동일시되어버린다면 그 끝에는 '허무함'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멋진 관광지 한 곳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버스 안에서 자유를 속박당한 채 이동만 해야 한다면 피곤하기만 할 뿐 그 여행이 행복할리 없다. 연예인이 자살률이 높은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꿈같은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지만, 그 무대 하나를 위해 감내해야 할 하루하루의 일상은 아마도 매우 힘들 것이다. 만약 그 꿈같은 무대가 인생의 행복 그 자체가 되어버리면 꿈과 현실의 사이에는 큰 허무함이 존재할 것이다.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경험을 한 만큼 보통 사람은 생각도 못 할 허무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은 패키지여행 같은 삶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삶의 어느 시점에 어떤 목적지에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그것이 행복이라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 룰을 따라야 함을 강요받는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남이 가본 곳은 다 봐야 하는 것처럼 남이 하는 건 똑같이 다 해야 한다.

 

이는 성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에게도 해당된다.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올라감에 따라 최소 어떤 학원 정도는 다녀줘야 하고, 고등학생 때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자라서 성인이 되면 그런 삶에 익숙해져서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 마치 5성급 호텔에서도 잠만 자고 또 달려가듯이 인생의 소중한 순간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달려가야만 한다.

 

아마도 회사생활은 이런 패키지 인생에 가장 부합할 것이다. 최대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인력을 딱 맞게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고, 당연히 구성원들은 그 시스템 안의 부품이 되어 타이트하게 돌아가야만 한다. 딱 맞게 운영되는 인력은 경영학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우수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인생으로 본다면 행복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는 자신의 모습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이 보통인 부서에서는 소위 일을 쳐낸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말 그대로 개인에게 들어오는 일의 의미와 본질을 정확히 모르고 쳐내기 바쁘다는 뜻이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한 표현이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일을 명확히 알고 해도 의미를 느끼기 어려운데, 그렇게 쳐내기 바쁜 일상에서 노동의 의미를 느끼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정신없이 일을 쳐내고 난 후 퇴근하는 길에 느껴지는 감정이 뿌듯함이었는지 허무함이었는지 되뇌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삶의 목적지는 자의로 선택해야 하고, 행복은 목적지가 아닌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목적지를 자의로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생을 중시하는 사람이 인도 오지여행을 가고 있다면 그 길이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참고로 인도는 길거리에 개똥, 소똥, 인분이 즐비한 곳이 많다). 그 똥 길이 자신이 택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쳐나가려고는 하겠지만 타의로 선택한 길이라면 여행 내내 짜증이 날 수 밖에는 없다.

 

만약 자신이 가고 있는 여행이 기대와 너무 다르다고 판단된다면, 가능하면 그 여행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목적지를 즉시 바꾸는 게 좋다. 하지만 여행지를 쉽게 바꿀 수 없는 처지라면, 최소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어느 곳으로 갈지 잘 생각해보고 방향 만이라도 자의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끝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가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 걷는 길이 똥 길일 지라도 감수하며 걸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똥 길인지 알면서도 계속 걸을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행복이란 일상에서 온전히 누려야 할 것들이 되어야 한다. 목적지를 바꾸고, 방향을 바꾸어서 갔지만 내가 도착한 그곳이 다시 똥 길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목적지가 행복 자체가 되어 버리면 위험한 부분이 이런 것이다. 나는 맞다고 생각하고 가고 있지만 그 목적지가 어떤 곳인지는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목적지는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행복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 되어야 한다. 바쁜 일상일지라도, 일상 속에서 챙길 수 있는 행복을 챙겨야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습관적으로 그것들을 누려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 맛있는 식사 한 끼, 주말에 낮잠 한 시간, 커피 한 잔 하며 책 읽기, 맥주 마시며 드라마 보기, 과자 먹으며 만화책 보기, 경치 좋은 카페 가기 등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우리 인생에서 소소하게 챙길 수 있는 행복이 참 많다. 맘 놓고 놀자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에도, 우리가 챙겨야만 하는 인생의 행복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주말이 왔다. 오늘 하루만큼은 고생한 나를 위해 따뜻한 식사 한 끼와 포근한 낮잠을 선물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작가소개>
직장에서는 열일하고 퇴근 후에는 꿍꿍이(꿈)를 고민하는 직장인. 30대에 카페운영, 출간작가, 금융 (준)전문가가 되고픈 꿈이 있어요. 그 꿍꿍이를 그려가는 자취를 글로 씁니다.

작가 브런치 : https://brunch.co.kr/@kwj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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