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히 짓밟힌, 'N번방'의 땅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히 짓밟힌, 'N번방'의 땅에서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확립되지 않은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법, 종교 구분이 모호했던 과거에는 신이 내리는(그랬다고 믿는) 규범이 곧 법이었다. 누가 내렸다고 전달했는지 따지지 않겠다. 지난 3월 5일 졸속 처리됐던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건은 김학의, 승리, 안태근, 기타 등등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의 세상이라는 것을 버젓이 드러내는 결과물이었다. '졸속'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 천지인 세상서 그 우선을 따지거나 경중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재하는 증거가 눈앞에 들이밀어졌다고 알려진 사건과 상황 등에 대해서도 누군가들의 순간적 안일함, 게으름은 '악마라고 부르면 악마에게 미안할 법한, 누군가'들이 빠져나갈 여지, 살아갈 희망 따위를 '감히' 부여하고 말아버린 결과가 됐다. 법을 신뢰할 수 없으니 차라리 하늘에 대고 "왜 이런 겁니까", "저 놈들 좀 잡아가세요", "나쁜놈들 지옥에나 떨어져라" 외치는 움직임이 나오는 거다. 신이 내리는 규범 따위의 뭔가가 차라리 나을 거라는 순수한 생각에서다.

한 언론사는 아이템을 고르고 발제한 후 그저 '관행적으로' 관련 전문가의 코멘트를 인터뷰랍시고 내보냈다. 그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직접 속해보지 않아 알 수 없다. 그저 그 조직에 몸 담았던 이로 추측컨대 참으로 많은 안일함의 결과가 그런 괴물같은, 게으른 결과물의 인터뷰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그걸잘했다고 온라인으로 빠르게 출고하는 결과를 냈을 것이다. 모든 걸 다 안다고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기사를 내보내고, 어떠한 후련함 혹은 한 건 끝냈다는 후련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순간의 게으름으로, 그들은 '악마라고 부르면 악마에게 미안할 법한, 누군가들'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여지를 주었을 것이다. 역시나 일부는 이 기사를 공유하며 그러한 범죄가 '처벌받을 수 없음'을 확인하는 일종의 '합리화 매개'로 소통하고 있다니 암담한 현실이다.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 나온 멘트를 그대로 넘기고, 온라인 기사로 출고한 과정에 있던 그 수많은 인간들은, 그 결과는 자신들이 낳은 것이 아닌, '현실이 그런 걸 어쩌랴'고 자위를 해대며 합리화를 해댔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논란이 있고 독자들의 지탄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지도. 그러한 안일함, 게으름으로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서,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언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언론사에 소속된 이들 중 일부가 사생활에서 도덕불감증을 가지거나 그저 자신의 특권을 당연시하고 누리는데 빠져 게으르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그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과다하게 주어진 것들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펜, 입을 가진 직업은 게을러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의심하며 날서있어야 한다. 이런 직업을 택할 때, 안일하게 택했다면, 그 판단은 대개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들이 받는다. 그러니 학자들은 일반 대중이 언론사의 결과물을 보면서 그리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도 일부는 그래도 언론사의 일부 무능한 조직원 등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들 경고했을 테다.

역사적으로 진보매체란, 투쟁의 시기 혹은 폭로가 필요한 시대 상황 등에서 제역할을 하면서 권력자를 감시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실제 '진보 세력'이라 불릴 만한 언론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프레임 전쟁은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어디에든 적용되며 어디서든 시도되는 것인데, 작금의 한국은 그저 프레임에 빠져 너무 많은 이들을 손쉽게 짓밟고, '진보'라는 이름을 어쩌면 너무나 쉽게 가져갔던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해보는 것이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 망정, 현상을 냉정하게 보지도 못할 망정, 냉정이 아닌 어떠한 형태의 '무심함', 나태 등으로 현실서 필요한 논의,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방해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기사글, 관련 언론사, 담당자에 대해서는, 아무리 통탄해도 바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좌절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날로 높아지며 언론사에 대한 독자의 의심, 견제가 높은 한국 특성,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언론사, 전문직 등에 대한 불신이 높으며 독자 스스로 정보를 찾아 읽는 이른바 '리터러시' 능력이 어떠한 의미에서건 '특출난' 한국 땅의 독자들은 서서히 '진보' 이름 뒤에 숨은 일부 사고뭉치 언론사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 언론사의 피해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재한 만평 삭제 등은 독자들이 이젠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생각, 그 결에 대한 이해, 공감도가 높아지고 나아가 그것을 적극 표출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는 어떠한 의식의 전환을 이뤄냈다는 것 등을 상징하는 바, 이에 희망을 품어보는 것이다.

화는 내야 할 때 제대로 내야 한다. 일상생활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감히 '페미니즘' 또는 '기본권'의 이름을 이름을 들먹이며 괜한 분노로 오해만 키울뿐 정작 필요할 논의를 흐렸던 이들은, 어느 때나 그랬듯 지금 같은 때 조용하다. 방해되는 기사글만 내놓으며 중립인 척 해대며 논지를 흐린다. 회색에 있으려면 그냥 회색에 있어라. 회색에서 의식있는 척하는 것이 더 무서운 거니까. 반면 실제 필요한 현장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전개했던 이들은, 성명, 의견 표출 등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썩어 문드러졌던 인류애가 다시 꽃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짐승이라고 부르면 짐승에게 미안할, 누군가들' 혹은 '악마라고 부르면 악마에게 미안할 법한, 누군가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존엄해야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국가의 존재 이유는 이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그것을 가질 만한 인간이 가진다. 미성년자들, 존엄성을 가져 마땅한 인간을 대상으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천인공노'할 짓을 해대고 일말의 양심의 가책 없이 감히 '학보사' 등에서 '기자'의 이름으로 나댔던 이, 그 방에서 아무 죄의식 없이 다른 인간의 고통을 즐기고 죄의식, 공감 능력 따위는 없던 이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그저 '짐승'(짐승에게 미안하다) 혹은 '악마'(악마에게 미안하다)일 뿐이다.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https://brunch.co.kr/@grape


 
오피스Wa 목록보기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