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평가가 기다리는 자유방임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아직 정식으로 신입사원이 되기도 이전인 인턴사원 시절. 지금이야 인턴생활을 했던 팀에서 잘 근무하고 있다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이 팀으로 다시 돌아올 수는 있을까?’는 커녕 ‘이 회사에 붙을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을 더 많이 하곤 했던 그 때. 회사는 내게 ‘평가가 기다리고 있는 자유방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앞으로의 일이 무엇 하나 확정되지 않은 그 때의 쭈구리들에게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는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면, 회사(와 그 구성원들이) 나를 자기 식구처럼 잘 챙겨주길 바라는 것 또한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안녕하십니까! 인턴사원 B 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라는 나의 공손한 인사에
“아 반가워요 B씨. 그런데 여기서는 열심히 안해두 돼~ 잘 하는게 중요하지^^”
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던걸까?
 
인턴사원의 입장으로 팀에 배치받은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목적을 알 수 없이 제한된 사이트만을 돌아다녀야 하는 웹 서핑이었다. 바람을 쐬러 나가기는커녕 팀에 배치받으면 정해준다던 나의 과제가 뭔지 물어보기도 어렵고(나한텐 합격이냐 불합격이냐가 달린 일인데!), 주위 사람들은 뭔가 다들 바빠 보이고, 저 사람이 내 멘토라는데 그는 내 쪽을 쳐다볼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것 같고! 처음 온 날 내게 “심심하시죠? 드릴건 없고 이거라도 보시면 좀 나을거에요~” 라며 1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장 동향을 분석한 자료를 건네준 옆자리의 선배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과제가 정해져도 나에 대한 자유 방임주의는 “준비 잘 해봐요.” 라는 말 이후로 변함 없이 유지되었다. 아무리 합격 불합격이 걸려있고 앞으로의 인생이 걸려있다고 해도, 사람이 한가지 일만 하루 종일 할 수는 없는 법이라지만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과제의 결과물’ 뿐만 아니라 ‘나의 평소 행실’도 포함되어 있음이 너무도 당연해서 과제 외에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나를 (보는건지 내가 띄워놓은 인터넷 창을 보는건지 아무튼) 쳐다보며 “인턴인가보네요? 뭐하고 있어요?”를 시도때도 없이 물어보는 통에 평소 즐겨보는 포털사이트의 스포츠 기사를 찾아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이, 정해진 과제와 조금이나마 관련이 있어 보이는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PPT 작업을 하고, 졸음을 참으며, 나의 인턴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열심히’ 보다 ‘알아서 잘’ 하라는, 평가가 기다리고 있는 자유방임의 무서움만 남겨둔 채.
 
 정식으로 입사한 후 한 사람의 직원으로써 일을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도 결과물을 뽑아내려 하는 회사의 입장상 자유방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직원들 또한 자유방임 속에서 무언가 만들어내어 평가를 받는 것 보다는 위에서 시키고 지시하는 대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므로 그저 그렇게, 마음속으론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곤 한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 어따 이름 한번 멋지다..
 

 
 어디에선가 봤던 구글에 대한 기사중에, “구글은 Google X 라는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부서가 있어서, CEO가 직접 진두지휘를 하며, 해당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고 참여한 직원들은 약 10~15년동안 업무에 재량권을 가지고 그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탄생한 구글의 제품이 Google Glass이고, 무인자동차이고, Project Balloon이다.” 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1달 남짓 되는 자유방임에도 힘들었던 내게 이 기사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10년~15년 이라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과연 구글..’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요즘 세상에 구글이 그렇게 막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회사부터 직원들이 모두 그 무서운 ‘평가가 기다리고 있는 자유 방임’을 잘 이겨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혁신을 외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외치는 것 보다, 직원들이 두려워하는 ‘어떤 것’을 이겨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회사가 영속하는 데는 어쩌면 그 분위기가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키는 일만 수행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요즘은 자유방임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다만 결과를 내고 평가 받는 것이 싫을 뿐이지요. “니가 책임 질거야?!” 라는 말을 주구장창 들은 오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는 구글 CEO의 마음가짐이 참 멋져 보입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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