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피할수도 즐길 수도 없다면 버텨라!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내가 처음으로 팀 배치를 받은 날. 그 날은 앞으로 내가 속하게 될 파트의 회식 날이었다. 
 
 "신입사원이 온다구?! 그렇다면 역시 회식으로 환영해 줘야겠지!" 
 
 라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라 공교롭게 날짜가 겹친 것뿐이었지만, 바로 그 공교로운 타이밍 덕분에 나는 그날 회식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팀 내에서 내로라하는 주당들이 모인 우리 파트의 회식은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았고, "가볍게 건배한잔 하고 시작하자. 환영한다!" 라는 파트장님의 말을 "저놈 죽여!" 라고 이해한건지, 우리 파트원들은 건배가 끝나자 마자 빛과 같은 속도로 술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정식으로 팀 배치를 받은 첫날이라 잔뜩 긴장했던 내 몸은 한잔, 두잔 술을 마실 때마다 붉게 물들어 갔지만, 얼떨결에 차지하게 된 주인공 역할 때문에 술을 거절할 수 없던지라 주는 대로 계속 받아 마시게 되었고, 결국 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평소 술에 취하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나지만, 그날은 그 와중에도 '여기는 회사야! 버텨야해!' 라는 의지가 강했는지 다행히 잠들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틴 스스로를 칭찬해 주며 택시를 탔고, 그대로 의식이 끊겨 버렸다. 

그리고 그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두근거리는 맘을 도저히 억누르지 못하고 기사님께 중간에 세워달라고 말한 뒤 한바탕 속을 게워내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한 것은 팀원들은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다.


 

ⓒ 회식자리에서의 호응은 계급이 하는게다. (마음의 소리 中)
 


 짧게 이야기했지만, 이처럼, 회식은 어렵다.
 
 선후배나 집안 어른들, 친구들과의 술자리와는 달리 '회식'은 차원이 다른 어려움을 자랑한다. 모일 회會, 먹을 식食. 단순히 ‘모여서 먹는다.’는 사전적인 의미처럼 간단하면 좋으련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엔하위키미러라는 사이트에서 ‘회식’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직장 사람들과 정규 근무 시간 이후에 일반적으로 음주를 동반한 식사를 하러 가는 것. 상사, 동료, 후배들과 가는 것인데,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명확하고 상하관계질서와 예의범절을 매우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긴장하는 회사생활의 연속이며, 사실상의 연장근무라고 봐야 한다. 친구끼리 밥 사먹는다면 부담은 없지만 회사 상사들과 같이 먹으러 간다는 건 엄청나게 부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들은 당황하거나 몹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실수를 해서 오히려 상사들에게 찍힌다. 그리고 술이 약한 사람이 제일 부담스러워 한다.”
 
 
 이처럼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회 초년생들은 수 차례의 회식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각자만의 노하우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의 칼럼은, 내가 터득한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은 인터넷이나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여타 회식자리 대처법과는 내용이 좀 다른데, (식상한 표현을 하자면) 직접 몸으로 겪어가며 터득한 방법이니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면 어떨까 싶다.
 
 

1. 자리 배치의 중요성 – 시작할 때는 술고래의 옆에 앉아라.

시작부터 무슨 개똥 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수 차례의 회식을 해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그 자리에서 가장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의 근처에 있는 것이 좋다. 회식 시간을 크게 초반 – 중반 – 후반으로 나누자면, 초반에는 술고래의 근처에 있으라는 소리다.

 첫 번째 이유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다. 보통 회식은 처음에 높으신 분이 한 말씀 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술고래와 함께 술을 마셔야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한 말씀 하셔야 하는 높으신 분이 당신 옆에 앉은 바로 그 술고래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분의 한마디가 끝날 줄 모르고 길다면? 감사하게 생각해라.

 두 번째 이유는 술고래도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술을 마시자!”는 말은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 말씀 듣고 밥까지 먹는다면? 회식 초반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세 번째 이유는 회식자리는 결국 돌고 돈다는 것이다. 그 어떤 회식자리에서도 처음 배치된 자리 그대로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로 찾아가 인사도 해야 하고, 저쪽에 있는 사람과도 한잔 마셔야 한다.

즉, 초반에만 술고래 옆에 있다면 회식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중반과 후반에는 평화로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창 분위기도 무르익은 상황에서 술고래의 근처에 가고 싶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혹시라도 새로 옮긴 곳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술을 권한다면, 이렇게 말해라. “아까 저쪽 자리에서 너무 많이 마셔서요^^;;”
 

2. 고인 물이 되지 말아라. – 자주 돌아다녀라.

화장실에 가도 좋고, 바람을 쐬러 나가도 좋다.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숙취 해소 음료를 마시고 올 시간이 있다면, (걸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대 환영이다. 회식자리에서 고인 물이 되어봐야 당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알코올 뿐이다. “저는 원래 술 한잔 마시면 물도 한잔 마셔요.”는 아주 훌륭한 자세다. 그렇게 마셔대면 소주를 마신다 해도 수시로 화장실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3. 무릎을 꿇고 앉아라. – 긴장이 풀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인간의 정신력은 위대하다. 그 말인 즉슨, 긴장이 풀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소리다. 회식 초반 술고래 옆에서 너무 무리했다 싶으면 중반부터는 무릎을 꿇고 앉아보자. 다리가 아파서 자주 돌아다니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당신이 마시게 되는 술의 양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설령 많이 마신다고 해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니 긴장하게 되어 술이 취하는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늦어진다. (다만 갑자기 다리를 폈을 때 찾아올 극도의 다리저림 + 긴장풀림은 당신에게 취함의 신세계를 보여줄 지도 모른다.)
 

 

 
ⓒ 이 얼마나 꿈 같은 능력인가!(골방환상곡 中)


 
 내가 터득한 회식자리에서의 생존 방법은 대략 이정도다. 부디 여러분도 훌륭히 살아남기를 바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 회식자리라면, 그냥 버티는 수 밖에.
 
 참고로 나는 내일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 음…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니 그냥 버텨야겠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쭈구리의 취중직담 더보기

오피스Wa 목록보기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