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 줄이 네 줄이냐.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다 함께 어울려서 'We Are the World'를 외치며 살아가면 좋으련만, 사람의 본성이 그렇지가 못한 것인지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원들 사이에 벌어지는 굉장한 경쟁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말 그대로 무한 경쟁의 연속인 회사에서는 '승진'이라는 목표를 위해 벌어지는 경쟁이 가장 무섭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역시 난 대장체질이겠지!', '네놈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 라던가.. 뭐 승진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목표를 승진으로 잡아 놓은 사람의 삶은 참 피곤하고 힘들어 보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연말 인사고과에서 승진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한층 더 팍팍해 질 것이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한잔 하면서 이렇게 말할게다. 
 
 "내가 라인만 잘 탔어도...."
 
 
 

 위 설문 조사 결과에서 보는 것 처럼, 직장인이라면 거의 대부분 회사 내부에 있는 '라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사실 입사한지 이제 겨우 1 넘어가는 나도 아는데 모르면 그게 이상한 일일지도... '라인'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 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다른 질문들에 대한 응답 내용들을 보면 라인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 전, 점심시간이었다.
 
 동기 H, Y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직장인이라면 식후엔 커피다!"라고 외치며 회사 근처의 카페에 간 우리는 낯선 광경 하나를 보게 되었다. 카페 지하의 방에서 우리 회사 임원부터 팀장, 부장급까지 약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요즘에야 자유로운 회의 분위기를 권장하므로 카페에서 회의하는 모습 자체가 낯설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업무적으로 좀처럼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회의에 사용할 어떠한 필기도구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표정들이 너무 어두웠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회사의 임원급들이 모여있는지 궁금해서 천둥벌거숭이처럼 방 안을 힐끔힐끔, 몰래 쳐다보던 나는 어느 순간 회의에 참석중인 임원 한분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쳐 버렸다. 순간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인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여기는 있을 곳이 아니다'는 생각이 든 나는, "젊을 때부터 커피를 이렇게 앉아서만 마시면 나중에 너희의 무릎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H와 Y를 데리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오빠, 갑자기 무슨 산책이야 산책은. 그냥 시원한데서 앉아서 마시지~"
 "아니야... 니가 저 방 안의 분위기를 못봐서 그래. 거긴 우리같은 사원 나부랭이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왜? 그 사람들이 카페 전세라도 냈어?"
 "ㅇㅇ 분위기 상으로는 전세는 커녕 오히려 구입한 분위기"
 
 겨우 카페 밖으로 탈출한 내가 H에게 '카페에서 나와야 했던 이유'에 대해 장황한 잡소리를 늘어놓으며 납득시키던 그때,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빠져있던 Y가 갑자기 "알았다!" 며 눈을 빛냈다. '얘가 갑자기 뭘 알았다는 거야...',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기분이 이런걸까?' 등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나와 H에게, Y는 우리가 카페에서 본 그 모임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회사 내부 소식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Y가 우리에게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우선, 카페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모 전무의 소위 말하는 '라인' 이었다.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모 전무가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직위 해제 또는 보직 변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회사에 돌고 있었는데 (물론 나는 금시초문이었지만), 지금 보아하니 그 전무가 자기의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긴급 대책 회의를 하는 것 같다- 는 것이었다. 이 설명을 듣자 내가 카페에서 보았던 임원의 인상쓴 표정이 그제서야 납득되었다. 그 표정에 "황금줄인줄 알고 잡았는데 썪은 동아줄이었단 말인가!"라는 말풍선을 넣으면, 모든 것이 기가막히게 설명되지 않는가!
 그 뒤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그 전무의 직위 해제나 보직 변경 등의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H와 Y는 "그 작전회의가 성공이었나보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라인'의 위력을 직접 목격하고 새삼 놀랐다. 실력보다 강한게 평판이라는데, 그 평판보다 강한건 라인이구나- 싶었다고 해야할까. 
 
 
 아직 신입 나부랭이인 내게 있어 '라인'은 상상속의 동물인 여자친구처럼 그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그저 존재한다고 하더라- 정도의 것이었다. 회사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나도 언젠간 승진을 할테고 내가  갖고 있는 실력보다 주위에서 나를 보는 평판에 더 휘둘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평판보다도 강력한 '라인'의 힘을 몸소 느끼는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겁이 먼저 난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가 통하지 않는 세상을, 나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실력도 없는데 말이야. 높으신 분들을 보면 괜시리,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해 진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수드라 – 바이샤 – 크샤트리아 - 브라만. 오등작은 남작 – 자작 – 백작 – 후작 - 공작. 회사에서는 사원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 임원. 저는… 남작은 꿈도 못꾸고 ‘수드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허허.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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