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아침생활 답사기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고백하건데 - 인턴시절 팀장님과의 출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그냥 저냥 적당한 시간에 출근한다고 말했지만 -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므로, 몇 번이나 일찍 출근하여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회사(일) - 집(잠) 이라는 쳇바퀴 같은 시간표에 무언가를 끼워 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옛 성인들의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기 때문에 3일 이상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그 동안 내가 실천(하고자) 했던 아침 생활들 중 몇 가지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 더 이상은 무리야 벌써 삼일째라구…

 
 첫 결심은 입사하고 2달여가 지났을 때였다. 집에서 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보게 된 그 날 결심을 하고 만 것이다. '그래. 나는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직장인이 될거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 시간을 활용하겠어!'라고 결심한 나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여 업무와 관련된 전공 지식을 공부하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다음날 출근길에 대학시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던 전공책을 챙겨들고 무려 7시 반에 회사에 도착했다. 
 익숙하지 않은 생활 패턴임에도 불구하고, 첫날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업무를 하다가 나오는 모르는 용어들을 전공 서적에서 찾아가며 '아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얘기했던 거구나.' 를 알아가는 기분은 오랫만에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비록 업무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단점도 있었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첫번째 계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은 바로 둘째날 일어났다. 아뿔싸. 팀장님이 벌써 출근해 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라는 인사를 하는것과 동시에 팀장님의 눈이 빛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눈빛은 '요놈 잘 왔다.'는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모르는척 뒤로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펴려는 순간,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잡았다 요놈!

 
"B야, 잠깐만 이리 와봐라. 내가 이따가 9시에 회의에 들어가서 보고를 해야되는데 자료 정리가 아직 안됐다. 이것좀 얼른 ppt로 만들어봐라."
 
 아... 지금은 잘 아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업무시간은 법으로 정해놓은 9시부터가 아니라 회사에 출근한 그때부터라는걸. 아니, 윗분의 눈에 발각당한 그 순간부터라는걸... 그날 나는 전공 서적이고 나발이고 옆에서 채근하는 팀장님의 격려에 힘입어 1시간 반동안 광속 PPT 작업을 했고, 팀장님은 보고시간에 맞춰 자료를 들고 가실 수 있었다. 다만 보고하러 들어가는 팀장님의 "15분만 일찍 왔어도..."라는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들은 그 순간, 앞으로는 그냥 평소대로 출근해야겠다- 고 다짐했다.
 
 
 첫번째 도전은 이렇게 끝났지만, 나는 사람으로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또 한번 같은 실수를 반복해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사무실에 있다가 일을 받게 되었으니, 차라리 일찍 출근해서 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자! 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의욕만 앞선 다짐을 한 것이다. 회사에 헬스장도 있으니 운동하고 거기서 씻으면 되겠다,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으니 식사도 해결되겠다- 문제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이번에도 굳은 결심을 하고 출근가방에 세면도구를 우겨넣은채 출근한 첫째날, 회사 안에 있는 헬스장에 도착하여 의욕 넘치게 운동을 시작했다. 런닝머신 위에서 런닝을 런닝런닝 하고, 아령을 들고 근육은동을 근육근육 하다보니 1시간이 휙 지나갔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 자리에 도착! 오... 그 충실함...!!! 은 2시간을 채 넘어가지 못했다. 아침에 예정되어 있던 회의에 들어가자 마자 참을 수 없는 피곤함과 나른함이 몰려온 것이다. 아침 10시, 모두가 가장 쌩쌩하고 활력이 넘치는 그 시간에 내 몸은 이미 빈사상태였고- '아침 회의에 참여하여 격렬하게 헤드뱅잉을 하는 신입사원'이 되는 것으로 나의 두번째 도전도 막을 내렸다.
 
 
ⓒ 여러분의 애수넘치는 표정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중이다. 사무실에 가면 일을 하게 되고, 운동을 하면 헤드뱅잉을 하게 되니 이번에는 출근하기 전에 학원이라도 다녀볼까 생각중이다. '무엇'을 '왜' 배울 것인지 목적도 이유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아침에 뭔가를 해야 겠다는 생각에 하게 된 결심이지만, 전적에 비추어 봤을때 이번에도 일단 시도는 해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망하겠지. 영어는 언제 어디서나 경쟁력이라던데 영어학원을 다녀볼까? 아니면 떠오르는 시장인 중국 공략을 위해 중국어를 배워볼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성공적인 아침생활을 위해,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이번에 또 무슨 뻘짓을 하게될지 모르지만, 분명히 실패할 겁니다. 실패를 기정사실화 해놓고 시작하면 자괴감같은건 없겠죠.. 사실은 뭘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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