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천하제일 아이디어 대회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자,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박 3일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단하던 회사 생활에 한줄기 단비가 되어준 예비군 훈련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훈련기간 동안에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온 것 같더니, 끝나고 나니까 왜 이렇게 금방인지. 집으로 가는 버스 앞에서 나눠준 핸드폰을 받자 마자 자연스럽게 전원을 켠다. 요 몇 일간 어떤 연락들이 왔으려나~ 설마 아무것도 오지 않은 건 아니겠지.
 
 

[ 오… 오옷! 굉장한 진동이다! ]
 
 
-       우오오아오아오아우오아왕
 
 3일간 켜지지 않았던 핸드폰이 ‘읽지 않은 메시지가 가득함’을 알려주기 위해 켜지자 마자 손 안에서 폭풍 같이 몸부림친다. 깨톡 알림이라도 꺼둘걸. 보나마나 단체 깨톡방에 메시지가 폭발하기라도 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핸드폰이 이렇게 날뛸리가…. 어라?! 깨톡이 전부일 것 같았던 메시지 알림중에 문자 메시지 알림이 섞여 있다. 이거 뭔가 불안한데…
 

 

[천하제일 아이디어 대회를 시작합니다!]
 

-       사내 아이디어 Festival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 진행됩니다. 세상을 바꾸고 우리 회사의 미래를 책임 질 수 있는 여러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응모를 부탁 드립니다. (회사에서-공지한다)
-       사내 아이디어 Festival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 진행. 팀 내 사원들은 넘치는 아이디어 중 하나를 선택하여 금요일까지 필수 제출 요망. (팀장님-어명이다-제출하라)
-       B씨, 훈련은 잘 끝났어요? 팀장님 문자 받았죠? 아마 내일 아침 팀 회의 때 어떤 아이디어 낼 건지 발표할 것 같아요. 자료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아이디어는 생각해 오세요~ (선배님-고마워요-알려줘서)
 
 
 허허허… 아이디어라니. 갑자기 말하면 그런 게 있을리가… 이제 그런 거 없는데.
 
 

[그런 거는 우리한테는 있을 수가 ㅇ벗어]
 
 
 힘겨운 취준생 시절을 지나 긴장 투성이인 인턴 시절을 거쳐 멋모르는 신입사원이 된 지금까지, 누군가 내게 「넌 회사에서 지금까지 뭐 했니?」라고 물어보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고, 아이디어를 ppt로 만들고, 아이디어를 발표했지요.」
 
 
 ‘기업의 최 우선 목표는 그 기업의 영속이다.’ 는 말이 있다. 때문에 기업은 항상 새로운 상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서 고객들에게 그것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해야 한다’와 ‘어떻게 할 수 있다’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새롭고, 좋고, 혁신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아는데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하냐구? 잘 알면서 왜 그러실까.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하거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 낸 벤처 회사를 합병하거나, 이렇게 직원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얻어 내는 거지 뭐.
 
 
 인턴 시절, 이 회사에 합격 하느냐 불합격 하느냐를 결정지을 나의 과제는 ‘xxxx xxxx를 위한 신규 서비스 기획’ 이었다. 어찌어찌 합격하고 신입사원이 된 후에 받았던 신입사원 과제는 ‘xxxx xxxx를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 제안’ 이었으며, 팀에 배치 받은 후 정식으로 수행한 첫 번째 업무는 ‘팀내 담당 서비스 기반의 신규 서비스 제안’ 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길게 떠들긴 했지만, 사실 난 다 이해할 수 있다. 말로는 「B씨는 아직 어리잖아,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기도 했고. 아이디어가 막 샘솟을 때지 뭐, 안그래?!」 라고 하지만, 아이디어나 신규 서비스 제안은 사실 인턴이나 신입사원에게 처음 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과제기도 하니까. 문제는 「어명이니 아이디어를 제출하거라!」가 아니다. 그 횟수와 빈도인거지.
 
‘세상을 바꾸고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디어’를 찾는 이 행사는,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다. 아… 대체 뭘로 이 세상을 바꾸고 우리 회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잡생각으로 가득할 것 같다.
 
 

[ 으어.. 아이디어라니.. 멍해진다.. ]
 
 
 의욕적으로 참여한 첫 번째 Festival에서 당당하게 참가상을 수상한 저는, 두 번째 Festival 에서는 마감 당일까지 고민한 끝에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저의 퇴근시간만 바꾼’ 아이디어 하나를 겨우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아이디어 고갈입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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