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미안하드악↗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어, 미안하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 그래, 아마… 힘들겠지만 시간되면 갈게. 다음에 보자.」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으면서도 아쉽고 답답한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쩌다 보니 또 이렇게 되어버렸다. 해야할 일이 아직 이렇게 남아있는데, 나랑 같이 일하는 상사들도 아직 저렇게 남아 있는데 어쩔 방법이 없다. 오늘도 약속을 깨버렸다.
 
 

ⓒ 약속이 취소되었습니다. 좋을리가 없지…ㅠㅠ
 
 
 회사생활을 시작한지 어언 1년, 그렇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어쩌면 나만 모르고 선배 직장인들은 다 알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도통 사람들을 만나질 못하고 있다. 이거 참, 씁쓸한 일이다.
 

 입사 초, 아직 제대로 된 업무도 없고 모니터를 보며 멍때리는 것이 내 전부였던때. 바로 위 선배는 물론이고 팀장님까지도 「6시다. 특별한 일 없으면 얼른 가거라.」고 내 등을 떠밀던 시절, 퇴근 이후의 시간은 내게 너무나 큰 기쁨이었다. ‘회사가 서울 도심에 있어서 다행이야!’, ‘이게 바로 Work & Life 밸런스지!’ 같은 생각으로 가득했던 나는, 월요일이면 플래너와 핸드폰을 펼쳐놓고 매일같이 사람들을 만날 약속을 잡곤 했다.
 
 이제 돈도 벌겠다 학생일때는 부담스러워서 못먹던 맛있는 음식도 먹고, 더 이상 지하철 막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흥이 다할때까지 놀아도 되던 그때. 아직 학생인 친구나 후배들을 만나면 「막상 다녀보니까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되겠던데?」 라고 허세를 부렸고, 직장인 친구나 선배들을 만나면 「회사-집만 할 순 없잖아요? 퇴근후에 뭘 하면서 보내는게 좋을까요?」등등을 물어보곤 했다. 「학원이라도 다닐까요? 아님 취미생활을 해볼까요?」라고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물어보던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엔 얼마나 멍청하게 보였을까.
 
 

ⓒ 퇴근후에 뭘 한다고? 쯧쯧…
 
 
 나의 해피 라이프는 입사한지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했다. ‘내 업무’가 생기면서 6시에 퇴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럴때마다 잡아놓은 약속을 깨야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라 그 약속만큼은 지키고 싶어 전날 아무리 야근을 해도, 갑자기 생기는 ‘벙개’에는 당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평일에 약속을 잡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이게 참 미안하다. 괜히 나 혼자만 바쁜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회사다닌다고 유난떠는 것 같고. 여럿이 모이는 모임에서 나 한명 빠지는건 괜찮지만, 만약 내가 그 모임의 주최자라거나- 그게 아니면 둘이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깨야할 일이 생기면, 정말 몸둘바를 모르게 된다. (그리고 아마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렇게 약속을 깨야 할 일은 꼭 약속시간 1~2시간 전에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먼저 나서서 약속을 잡게 되는 일은 없어져 버렸다. 언제 누가 보자는 연락이 오면 「시간이 되면 갈게.」라고 불확실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둘이 만나자는 약속은 그만큼 부담감이 커지게 된다. 만나자고 제안하는 입장에서 이 얼마나 불쾌한 리액션인가! 나만해도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참 싫었는데, 그 짓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

 

ⓒ 못난 나를 친구로둔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드아아악
 
 
 그러다 보니 요즘 내가 나서서 약속을 잡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는 경우에는 꼭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방법의 단점이라고 하면… 매번 보는 사람만 보게 된다는 거지만, 그들이라도 만나는게 어딘가 싶다. 누군가 나를 불러준다는건, 내 생각을 해준다는 거니까- 그곳에 만큼은 반드시. 너무나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직 이 이상의 방법을 찾질 못했다.
 

 오늘도 이렇게 약속이 깨지고, 애매한 시간에 퇴근을 하게 되면 혼자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가 그냥 잠들것이 뻔하다. 그러면 침대에 쓰러진 채로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런게 회사원의 삶인가보다…」

 
 직장생활을 하게되면 회사 동료가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선후배가 되고 형동생이 된다더니, 그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거였군요. 오늘도 또 하나 배웠습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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