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가장 좋은 안주

 
「으으으 추워. 저희 4명이요!」

 칼바람에 꽁꽁 얼어붙은 몸을 부여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바깥 세상의 추위와는 너무 다른 온기를 몸이 아닌 안경으로 먼저 느끼는 듯 했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남자는, 다른 일행에게 어서 앉으라는 몸짓과 메뉴판을 달라는 몸짓을 훌륭하게도, 동시에 해냈다.


 


ⓒ 앞이 보이질 않는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뭐 드실래요?」
 「그냥 아무거나 먹자. 간단하고 금방 나오는 걸로.」
 「계란말이랑 꼬막 주세요. 소주 1병도 같이요.」


 차갑게 얼어붙은 소주와 기본 안주인 과자로 그들의 술자리는 시작되었다. 지체 없이 잔을 채운 그들은, '위하여' 조차 없이 한번의 '짠' 으로 술 한잔을 털어 넘겼다. 한잔의 술을 마신 뒤 누군가는 물을 마시고, 누군가는 버스럭버스럭 과자를 먹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는 등 반응은 제각기 달랐지만, 그들은 무엇인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듯 했다. 이윽고 핸드폰을 만지던 남자가 분통을 터트리듯 말했다.

 「아니 진짜, 너무 개똥같지 않아요?!」

 일행들에게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냉랭하게 굳어있던 그들의 분위기가, 일순 풀렸다.

 「개똥같지. 개똥이고말고.」
 「이러니 술을 끊을 수가 있나~」
 「우선 한잔 더 하시죠!」


 


ⓒ 이 개똥 같은 세상. 으아! 들이대!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활발해졌다. 계란말이와 꼬막을 가져다 주면서 슬쩍 들어보니, 아마도 회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하던거 하고 싶다고 가져가서 개똥을 만들어놓고- 이젠 다른거 하고 싶다고 그 똥 다시 나한테 치우래. 자기는 다른 똥 만들고 있으면서. 그리고 치우라는 똥 겨우 치워놨더니 그 인간이 싸놓은 똥 또 치우래. 그래서 신나게 치우니까 이번에는 똥 싸고 있는 옆에 가서 실시간으로 치우래. 그래 놓고 평가는... 똥 싸는 놈은 S 고 치우는 놈은 겨우 B야. 어때 개똥같지?」

 「똥싸고 있는 게 업무를 잘 하는 걸로 보이나 보죠? 아님 자기가 싼 똥을 후배에게 미뤄라-가 우리 팀의 모토라던가?」

 「팀장님한테 얘기는 해봤어요?」

 「서운하다. 답답하고 의욕도 안 생긴다.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건 안된다. 못보내준다네. 평가얘기 하면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러고만 있고. 이게 뭐냐 크크크」

 

 


ⓒ 피케야 니가 싼 똥은 형이 치워줄게..

 


 크 보다는 ㅋ에 가까운 자조 섞인 웃음이 마침표 뒤에 따라붙었다. 연말이고 하다 보니 그 동안의 불만에, 인사고과에 대한 불만이 함께 따라왔으리라. 서운하고 답답해도 말할 곳은 없고,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나도 당연한 조직의 생리에 저항하는 반항아로 낙인 찍혔으리라. 풀 수 없는 답답함은 분노가 될 것이고, 풀 길 없는 분노는 자조로 바뀌었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오...」

 ㅋ가 가득하다. 
 한숨이 따라온다.

 「ㅋㅋㅋㅋ... 힘내라 임마. 고생이 많다.」
 「감사합니다 대리님..ㅋㅋ」

 ㅋ가 가득하다.
 힘이되지 못하는 위로와 힘없는 감사.

 「ㅋㅋㅋ 가자. 많이 먹었다. 내일도 출근해야지.」
 「ㅋㅋㅋㅋㅋ 우리 이 짓을 앞으로 30년은 더 해야 되는거죠?」
 「30년이라니 임마 죽을때까지 해야지 ㅋㅋㅋ」


 ㅋ가 가득하다.
 술에 취해 벌개진 얼굴과 비틀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나선다. 집이 어딜지 모르지만, 지금 들어가면 3~4시간 정도 자겠지.

 

 


ⓒ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 여러분 웃으세요!




 계산을 하고 내일 점심의 해장 약속을 하며 그들은 떠났다. 함께 있어 즐겁지만, 마음속 응어리를 토해내지 못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그들은, 내일도 만나 ㅋ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치우고 밖을 본다. 어느새 눈이 많이 쌓였는데, 그들은 집에 잘 도착했을지 잠깐 걱정이 된다. 잘 갔겠지. 잘 갔을 것이다.

 가게 문을 닫으며 생각해 본다. '회사'라는 안주를 메뉴에 추가할 수만 있다면. 나는 부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은 안주는, 회사인듯 합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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