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일하는 사람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이건 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정입니다.」
「B씨… 난 일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합당한 기간을 받고 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위에서 하라고 내려왔고, 그러면 우린.. 해야죠.」

 그 한마디에 입이 굳어 버렸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지만, 그 말들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뱉어놓은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싶을 지경이었다. 힘들 것이 너무나 눈에 보이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역시 누군가에게 저 말을 들었으리라.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다. 하라면 해야 한다. 그 논리 앞에서 난 그저 말문이 막혀 버렸다.



 
 
ⓒ 할 수 있는건…



 제깟놈이 뭘 얼마나 안다고 저렇게 떠드는거야- 싶었을 텐데,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며 사업팀의 차장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르려 주었다. 힘들겠지만 고생하자- 는 의미였던것 같다.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일정이고, 주어진 시간안에 진행하면 퀄리티가 제대로 안나올 거 누구보다도 잘 아는건 내가 아니라 차장님일 텐데. 뭐 엄청나게 많이 알고 대단한 놈인것 처럼 실컷 떠들고 나서는 자신이 없어져서, 회의를 함께 들어온 우리 팀의 차장님께 물어보았다. 


「제가 오늘 너무 심했나요…?」
「아냐 잘 했어. 원래 회의가 이렇고 합의가 이런거지. 마냥 듣고만 있을 수 있나. 오늘은 이만 하고 퇴근하자. 저녁도 못먹었는데 벌써 시간봐라. 팀장님한텐 내일 보여드리면서 혼나면 되지 뭐.」

 차장님도 내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은 일단 집에 가서 쉬자고 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범한척 하려고 했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뭐라고.



 
 
ⓒ 창피하고, 시간을 돌리고 싶고, 뭐 그런 기분.



 회사에서 우리가 하는 건 뭘까. 일이지 멍청아. 그 일은 내 일일까 회사의 일일까? 열심히 해보라는 그 일은 나와 동일시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이 일을 왜 잘 해보려는 걸까. 그런다고 내게 달라지는게 있기는 할까? 이렇게 중요해 보이는 일조차 내가 앞으로 할 일 중의 일부일 뿐이고,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고민하고 고민한 내용이 내일 팀장님의 전화 한통이면 다 끝나는 문제는 아닐까. 내 어깨를 두드려 준 저 분들은 이런 고민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동기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내가 만나본 최악의 카운터 파트’ 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것도 알지 않을까. 나도 그분의 술자리 안주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위해서든 회사를 위해서든 잘 해보자고 함께 하는 일인데, 나는 그를 왜 적군처럼 대하고 있을까. 우리는 같은 편이어야 하는데 왜 서로가 살길만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하는 건 뭘까.


 
 
ⓒ 내가 나에게 묻는다.



 어느새 또 한해가 지나고, 인사의 계절이 지나 내년의 모습까지 그릴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쭈구리인 나는, 얼마나 대단한 것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한없이 건방진 녀석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본인이 들고 온 일정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는, 그러면서 우리 의견은 하나도 듣지 않는 카운터 파트 차장님을 흉보기 위해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그의 불합리함과, 불공평함과, 억지스러움을 드러내려 했는데, 어느새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일정은 여전히 말도 안되지만,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고, 우리는 일하는 사람이니까. 


내일은 두 차장님들께 보다 큰 소리로 인사드릴 생각입니다.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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