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역시 등잔 밑이 어둡겠지.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요즘 함께 일하고 있는 협력사와의 미팅이 있어 외근을 나갔을 때였다. 정해진 미팅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어서 아예 그 회사 근처에 가서 점심까지 먹었는데, 담당자에게 30분정도만 늦게 시작해도 괜찮겠냐는 연락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한 뒤 ‘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협력사의 번쩍번쩍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새 건물로 이사했다더니 이게 그 건물이구나 싶어 주위를 탐방해 보기로 했다.
 
 

ⓒ킁킁. 모험의 냄새가 난다.
 
 
원래 잘 나가는, 좀 규모 있는 회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건물을 돌아보니 그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높이 솟아있는 건물은 장엄한 자태를 뽐냈고, 벽면에 가득한 창문은 햇살을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반사시켜 번쩍번쩍 했다. 회사 내부에서의 흡연이 금지되었는지 건물 근처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어 그 주위만 자욱한 안개가 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건물 입구로 가봤다. 건물 크기에 비해 좁아 보이는 입구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철왕좌를 지키는 킹스가드처럼 본사를 수호하는 가드 분들이 늠름한 자태로 서 있었다. 잘나가는 회사의 본사란 이런거구나- 싶었달까.
 
 

ⓒ들어오시려면 사원증을 보여주시죠…
 
 
그러나 제아무리 모험 냄새가 나도 겉모습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모두 보내기에는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이 남은 시간을 보내려면 카페에 앉아있는 것이 제일이다 싶어, 근처 카페를 찾아 잽싸게 들어갔다.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카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통 흡연자가 있는 곳에는 카페가 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들어간 카페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밖에 사람들은 모두들 손에 커피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이 이상해서, 커피를 주문하며 나도 모르게 “마시고 가도 되는거죠?”라고 물어보자 사장님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 얼마든지 앉아있다가 가세요.
 
 
손님이 없어 적적했는지, 커피를 내어주며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여기 직원이세요?”
“아니요, 저는 오늘 회의가 있어서 처음 왔습니다.”
“그럼 회의하러 들어가서 사람들한테 커피좀 많이 마시라고 해 주세요.”
“사람들 커피 많이 마시는 것 같던데요? 더 마시라고 해요?”
“휴..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그렇게 커피를 사서 오는 건지. 저 회사 들어온다고 해서 원래 장사하던거 접고 카페로 바꾼건데, 도통 사람들이 오질 않아요. 아무도 없는거 봐요.”
“아… 그런가요? 회사 주변 돌아봤는데 근처에 카페가 여기밖에 안보이던데 어디서들 사오는 걸까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사장님의 이런저런 넋두리를 듣다 보니,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업종을 바꿔 놨더니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사오는지 알 수도 없는 커피만 마시고 돌아다닌다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 손님이 없다는 기분은 어떨까. 그 카페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라도 하면 경쟁이라도 할 텐데, 대체 어디 카펜지 알 수도 없어 더 답답하다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미팅시간에 맞추어 회사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건물로 들어가 담당자를 만나자 마자 그가 내게 말했다.
 
“아이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앞선 회의가 조금 늦게 끝나서요. 커피 한잔 하시죠?”
 

 

ⓒ 커피 말고 사이다 이런거 시켜도 되죠?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회사 2층에 있는 카페였다. 맙소사, 사장님. 어디서 사오는지 도통 모르시겠다던 카페가 여기에 있었네요. 당장 달려가서 말해드리고 싶었다. “여기는 결제가 사원증으로도 되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 안에도 사원증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계산되는 카페가 있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셨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니 우리 회사 밖에 있는 카페도 장사가 상당히 잘 되긴 했지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대다수는 회사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셨던 것이다. 멀리 안나가도 되니까 좋고, 계산은 간단하게 사원증만 띡- 하면 되니까 더 좋고. 이렇게 유동인구가 적은, 고객이라고는 이 회사 사람들밖에 없는 곳에서 회사 내부의 카페와 경쟁을 하다 보니 내가 다녀온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던 것이다.
 


ⓒ 힘을내요 슈퍼파… 사장님..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 카페에 들려 “사장님, 저 회사 건물 안에 카페가 있어요!” 라고 말을 해줘야 하는 건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발길을 돌렸다. 내가 괜히 얘기했다가 한숨만 더 깊어지는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등잔 밑이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었네요…
 
 
 
혹시 업종을 다시 바꾸시려면, 회사 안을 탐방해본 후에 변경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뭔가 이것저것 되게 많더라구요..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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