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일은 많고 시킬 사람은 많다.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사원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 팀장 순서의 직급 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 회사에서는, 때로 이들을 조금 더 작은 집단으로 구분하곤 한다. 사원~대리를 묶어서 '주니어'로, 과장~부장을 묶어서 '시니어'로 묶는 것이 그것인데, 우리 팀은 이 주니어와 시니어의 비율이 거의 5:5를 이루고 있다. 구조만 놓고 보면 참 바람직하고 보기 좋은 모습이다. 총원이 10명인 집단에 시니어가 5명, 주니어가 5명이면 1:1로 짝을 이루어 현업을 통해 일을 배울 수 있는 멘토~멘티의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현실과 이상간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총원이 10명인 팀인데 일은 20명분의 일을 들고 있다면? 주니어 사원도 앞에 나서서 한 사람의 몫을 하던가, 한 명의 시니어가 2~3명의 주니어가 담당하는 일을 봐주거나, 멘토~멘티 1:1로 묶인 2명이서 5인 이상의 일을 한다던가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설이 길었지만, 지금 우리 팀이 이렇다.


 

ⓒ자체 검열좀 했습니다.


일이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많은 것이 좋다지만, 요즘의 우리 팀은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운이 좋은 건지 재주가 좋은 건지 팀원 중에 몇 명은 여유가 넘쳐 보이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팀원이 자기 여력을 넘어서는 업무 때문에 허덕이고 있다. 안 그래도 힘든 이 상황에서, 일이 그만 들어오면 좋으련만- 할 일은 언제나 쌓여있기 마련인지라 우리 팀으로도 일이 숨쉴 틈 없이 밀려 드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선 팀장님이 전면에 나서서 "지금 우리 팀엔 여력이 없으니 추가 업무 요청은 좀 해결이 된 다음에 하시오!" 라고 선언해 주시면 좋겠지만, 팀장님도 조직에 속해 있다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 같았다. 즉, 요즘에도 우리 팀으로 일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콸콸.

 

ⓒ캡틴! 적들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니어들끼리만 만들어 놓은 카톡방에 선배가 눈물이 가득 담긴 카톡을 남겨 놓았다.
 
 "미안해요 여러분. 지켜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새어나가 버리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헐? 무슨일이에요 선배."
 "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불안불안"
 "무슨 일인지는 내일 알게 될 거에요. 팀회의때 팀장님이 애기하실듯?"

 
 아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이 좋지 않다. 누가 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사전에 귀띔해 주는 이 카톡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안 그래도 일이 철철 넘치고 있는데, 이번엔 뭘 시키려는 건지. 도저히 내일까지 진득하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사내 메신저로 선배에게 은밀히 물어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 ㅋㅋㅋㅋㅋㅋ 무슨일??
 - ㅋㅋㅋㅋㅋㅋㅋ 미안
 - 아니 뭔데 ㅋㅋㅋ 대충 알아야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 ㅋㅋ
 - 위에서 팀장님이랑 S차장님한테 뭐 확인하고 보고 하라는게 있었나봐. 우리 하는 프로젝트랑 비슷한 서비스가 외국에 뭐 있고 참고 논문이 뭐 있다고 확인해 보는거?
 - ㅇㅇㅇ 근데요?
 - ㅋㅋㅋㅋ 나야 프로젝트 하고 있으니까 같이 투입되서 원서 논문 읽고 뭐 자료조사 하고 있었는데 원래 각자 공부해 와서 오늘 서로 내용 공유 하기로 한거였거든
 - 설마?
 - ㅇㅇ 하나도 안읽어 오고 나한테만 물어봄ㅋㅋㅋ 대체 어쩌라는 건지 ㅋㅋ 내가 뭐 애기하면 거기에 맞장구 치는 척 하다가 그제서야 이해하는거야 ㅋㅋ
 - 근데요?
 - 보고를 당장 이번주에 해야 하는데 볼 양은 아직도 산더미고, 자기들은 안볼게 뻔하고 나 혼자 봐서는 다 못볼게 뻔하니까 주니어 사원들 투입시키겠다는 거지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프로젝트 상관있는 인원이고 자시고 '공부해두면 도움이 된다' 고 할듯? 아마 영어공부 신나게 할수있을거야 오랫만에

 
 음. 혹시나 했던 일이 역시나 였다. 아무리 봐도 일이 더 늘어날 것 같았던 내 예감은 이번에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 차라리 물어 보지나 말걸…


 안 그래도 일이 넘쳐나고 있는데 막아주지는 못할망정 또 일을 주다니. 순간 기분이 너무 갑갑했다. 이거 하라고 다그쳐 놓고 원래 하고 있던 현업에서 펑크 나면 뭐라고 할거면서 이렇게 대책 없이 받아오는 이유가 뭘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신나게 일을 받아놓고 구멍이 뻥뻥 나면 그건 팀장님한테 더 손해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팀장님은 펑크가 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그 동안 에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신입사원들에게, 주니어사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너희들의 머리가 제일 팽팽 돌아가니까- 라는 이유로 주니어 사원들은 현업 외의 업무를 또 받았다. 회사에서 각 팀마다 아이디어를 몇 개씩 내라고 할당 받았을 대도 주니어들이 모두 생각해 냈고, 시니어들은 그 내용을 팔짱 끼고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건 별로야 다시 생각해봐- 만을 날려주었다. 신나게 공부해서 팀 내 공유했더니 들어보지도 못한 어떤 내용을 말하며 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았냐고 무안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정리가 되어 결과로 만들어 졌고 그 내용은 상부로 또 올라갔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가볼 곳은 많은 것처럼, 할 일은 많지만 그걸 시킬 사람도 많다! 우리 팀에 주니어가 몇 명인데!!
 
 
 이것도 현업이라면 현업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킬 일이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기분이라도 좋게 생각하자고 다짐도 해 보았다. 그런데, 오랫 만에 영어로 가득한 무엇인가를 보면 과연 이 다짐을 지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할 일은 많고 시킬 사람도 많다! 그리고 내가 그중에 한 명이다!


 

ⓒ 자꾸 일 주는 이유가 뭐에요

 
 
말해봐요 왜 그 일이 갑자기 나에게 오는 거에요. 나랑은 상관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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