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Missing You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직장인의 꿈과 희망! 힘들고 지치는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두 번째 원동력!(첫 번째는 당연히 월급...) 주말을 기다리는 감정 따위보다 몇 배는 더 절실하고, 간절하고, 설레는 그것! 그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이해할 수 있고,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납득할 수 있는 마성의 단어! 직장인에게
‘휴가’는, 언제나 옳다...

 라고 주구장창 사설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위에 적힌 저 말들은 정말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는, 껍데기뿐인 말이다. 왜냐구? 저 말들이 들어맞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그 휴가가 '내 휴가' 일 때이기 때문이다.

 
ⓒ안녕 디지몬~ 네 꿈을 꾸면서 잠이 들래~

쭈구리들의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이기 전까지, 그들이 하는 업무 대부분은 보통 사수의 일을 돕는 것이다. 회의에 따라가서 회의록을 받아 적으며 '지금 내가 어떤 업무에 투입되어 있구나' 겨우겨우 감을 잡고, 사수가 보고할 일이 있으면 보고 자료를 함께 만들고, 업무에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싶으면 업무 메일에 (조심스레, 그리고 매번, 사수를 참조자로 함께 넣어서) 회신하는 것. 쭈구리의 업무는 대부분 이렇다.

"에이 뭐야, 겨우 그 정도야?" 하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내가 보낸 업무 메일에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음. 내 자리 어디 어디니까 직접 찾아와서 설명 좀 ㅇㅇ"이 아니라 나름 번듯하게 회신이라도 오면, '나도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잘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사수가 휴가를 가게 되면, 이 생각이 얼마나 오만 방자한 생각이었는지 바로 알게 된다. 그래, 남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다. 그리 먼 시점의 이야기도 아니고, 바로 이번 주 얘기다.

 
ⓒ일만 년은 더 있다가 와라!!

 
 사수가 휴가를 간 첫날.
 밀려오는 적들의 메일을 보며 아주 잠시 장판교 위의 장비를 떠올렸다. 그러나 나는 장비처럼 짱짱맨이 아니란 것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적들은 강했고 난해했으며 복잡했다. 나는 장비가 아니라 장비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잃고 주저앉아 버린 병사 1이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에 첫날이 지나가고 말았다.

 사수가 휴가를 간 둘째 날.
 원래 실무자끼리 하기로 되어 있던 주간 회의에 상대 팀의 팀장님이 불의의 습격을 시전하셨다. '실무자 끼리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라 생각했던 나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고 말았다. 

 사수가 휴가를 간 셋째 날.
 적들은 어제 주간 회의를 통해 내가 홀로 남았다는 것과, 치명적인 데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은 두 명의 담당자가 동일한 안건으로, 동시에 전화하는 필살기를 시전했다. 파괴력은 케인과 언더테이커가 함께하는 더블 초크슬램 만큼이나 강력했고, 그들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수가 휴가를 간 넷째 날.
 나의 사수가 대외적인 업무뿐 아니라 팀 내에서도 얼마나 많은 업무를 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구와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정 내의 온갖 시기와 암투에 맞서 싸웠을 때의 기분이 이랬겠구나- 하고, 말도 안 되지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억지인 것 나도 안다. 그런데 정말 순간적으로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사수가 휴가를 간 다섯째 날.
 나의 사수가 없을 때, 만만한 상대인 나만 남아 있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하나라도 더 받아내기 위함이었을까. 보통 메일이나 전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담당자들이 내 자리로 직접 찾아왔다. 그 상태에서는 나의 필살기이자 유일한 스킬인 "확인해 보고 연락 드릴게요."를 쓸 수 없었고, 수아레즈 없는 리버풀마냥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드루와 드루와


 
리버블로 - 가젤 펀치 - 뎀프실롤 콤보를 맞은 센도에게, 그 짧은 시간은 굉장히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의 지난 일주일이 그랬다. 그렇게 억겁의 세월 같던 일주일이 끝나고, 나는 집에서 홀로 축배를 들었다. 내가 남자를 이렇게 기다리게 될 줄이야... 하면서.


마지막날 사수에게 "일주일동안 수고했다. 월요일에 보자."는 문자가 왔을 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고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었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부끄러움도 없는지.
한 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에브리 데이 에브리나잇 아이엠 미씽유 예예예예에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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