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착하게 살아야 한답니다.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 유행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슬로건 아래 사람들의 시야가 국내를 넘어 세계까지 넓어진 계기가 되었다고는 하더라. 물론, 세상은 넓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주위에서는 ‘세상이 넓음’을 느끼는 경우보다 ‘세상 진짜 좁음’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오늘은, 그런 몇몇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다.


 
 
@으아니 세상에 이런일이!

1.    안녕하세요 오빠?!
전공을 살려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연구원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아는 형의 얘기다. 직업의 특성상 국가기관과 일할 일이 많아서 자주 공무원들을 만나게 되었고,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만나는 사람의 지위도 왔다 갔다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협의를 위해 국토교통부에 들어가 첫 미팅을 기다리고 있는데, 익숙한 젊은 여자의 실루엣 하나가 들어오더란다. 자리에 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라고 백 번도 더 생각했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 함께 하시게 된 사무관님이십니다.”

라는 인사에 일단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제서야 그쪽도 자신을 알아차린 눈빛이었단다. 형과 함께 미팅을 위해 참석한 주위의 박사님들이나 상사들이 “안녕하세요 사무관님. 잘 부탁 드립니다.” 라고 인사하고, 그 사무관도 “예, 잘 부탁 드립니다.”라고 인사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형은 정말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그 사무관은 자신의 과 후배였다. 워낙 성격도 좋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형은 과에도 아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본인이 석사를 마치고 경력을 쌓아 일하는 동안 그 후배는 무려 고시를 패스해서 이렇게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후 몇 차례 미팅이 더 있었지만, 사무관님은 형에게만 유독 편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어머! 오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고, 형은 “아, 네 사무관님. 안녕?” 이라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은 사무실에서도 ‘고위공무원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핫라인’이 되어, 모든 질문사항이 다 형에게 몰려들고 있다고 하니, 착하게 살지 않았으면 정말 호되게 될 뻔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진짜 있을 수도 있다니까요

 
2.    형 나 몰라?
이번은 내 얘기다. 팀에서 변함없이 막내 쭈구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않고 ‘정수기 물통 갈기’라는 나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내 자리는 정수기 바로 앞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옆에 남자화장실도 있어서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을 마시고, 물을 마시러 온 사람이 왔다가 화장실을 가기도 하는 등 굉장히 부산스러운 자리였다. 즉, 물통의 잔량을 확인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혼잡한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물통 갈기 외에 다른 업무를 해야 할 일이 있어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였다. 화장실 방향에서 무언가 나를 뚫어져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얼추 내 또래로 보이는 사원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같은 사원끼리 이런 눈빛을 쏠 리가 없지.. 내가 느낀 그 눈빛은 분명 ‘무엇인가 맞나 아닌가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번에는 정수기 쪽에서 그 눈빛이 또 느껴지는 것이었다. 야생의 감각으로 그 눈빛을 느낀 나는 고개를 들었고, 이번에도 역시 그 사원 하나가 종이컵에 물을 마시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옆의 물통을 보니 아뿔싸!! 물통에 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었다. 높으신 분이 목이 마르셨을 때 직접 물통을 들어 교체하면서 “아이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내가 물 마실 거니까 내가 갈아야지!” 라는 신세 한탄을 들을까 봐, 그는 나에게 그 눈빛으로 지속적인 사인을 보내주었던 것인가.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성큼성큼 정수기로 다가갔다. 눈을 마주쳤을 때 간단히 목례를 통해 그의 호의에 감사하고, 속이 꽉 찬 물통을 집어 드는데, 낯선 손이 물통으로 다가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드니 아까의 그 사원이 마치 물통을 함께 들 것 같은 자세로 손을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의가 참 바르시군요.’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B형 맞으시죠?! 형 저에요 S!”

어? 제 주변에 S라고는 한두 명이… 군요. 세상에. 그는 내가 군대 가기 전에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한 살 아래의 룸메이트 S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기숙사가 아닌 자취생활을 택해 연락이 끊겼던 그였는데, 살이 찌고 쓰던 안경을 치우고 몸이 탄탄해지고 머리도 멋들어지게 파마를 해서 못 알아봤지만, 나와 같은 회사에 1년 후배로 취직해서 심지어 같은 층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필사적으로 ‘그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다행히 없는 것 같아 요즘은 회사에서도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렇게나 세상은 좁다. 

 

@이런일도 있을 수 있겠군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세상이 워낙 좁기도 하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나만 해도 2번을 겪었으니 전 세계 인구로 넓히면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을까.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사실 회사만 안 가면 얼마든지 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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