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어쩔 수 없다.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야 이해할 만한 이유가 될까.......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해야겠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대중화됨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어느 유명한 학자가 했다는 "예전에는 100년이 걸릴 변화가 요즘은 10년, 아니 5년이면 가능하다." 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세대가 겪은 세상의 변화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미취학 아동에서 초딩 시절까지 나와 친구들은 학교에서는 공 하나 던져놓고 축구라 할 수 없는 축구에 온 영혼을 바쳤으며, 팽이를 돌리거나(탑블레이드가 아니다. 진짜 팽이다.) 구슬치기를 하거나 딱지치기를 하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중학생이 된 우리는 피씨방에 가서 짐 레이너와 사라 캐리건, 태서다르와 제라툴을 만나 우리의 돈과 영혼을 그들에게 헌납했고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 놀면서 돈을 쓰기 시작한 건 이 무렵부터인 것 같다.) 피씨방 사장님은 그런 우리를 언제나 반겨 줬다.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알이니 홀이니 다 긁어모아 문자를 써대던 우리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거짓말같이 문자를 걷어내고 카톡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까톡. 까톡.
 
이처럼 세상은 급격한 속도로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사업 환경도 겉잡을 수 없이 휙휙 변한다.
 
 서론이 길었다. 오늘 나는 10달 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한자 성어로는 렛미인 성형대박 상전벽해 라고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구조로 시작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온전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삐그덕 삐그덕 하면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프로젝트 발의부서에서 그런 구조로 달리게 될 것을 알고도 강요했던 프로젝트였고, 군말 없이 그 요구사항을 수용해서 10달을 달려왔던 것 때문에 억울해하는 것은 아니다. 발의부서 담당자들의 거친 말투 때문에 상처받았던 것을 내색하지 못하고 조용히 투덜거리며 참아왔기 때문도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사라지겠지만, 이 프로젝트를 포함하는 더 크고 지옥 같은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게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프로젝트를 참 열심히 했을 뿐이다.
 
 입사 초만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다녀보니 워낙 많은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는 대기업 내에서 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입사한 지 3년이 되어가고 있는 아직도 프로젝트 하나를 온전히 끝내본 적이 없으니 말 다했지. 내 실력이 뛰어나서 여기다 쓰고 저기다 쓰고 돌려막기 하는 것은 아닐 게다. 그냥 이쪽 프로젝트에 인원이 비니 채워 넣어서 땜빵하는 일의 연속이었지 싶다. 그런 모습이 싫어 팀장님이나 파트장님과 면담을 할 때도 '온전히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해 보고 싶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고, 그때마다 알았다고 하신 그분들은 다른 일이 생기면 언제나처럼 나의 담당 업무를 바꿔주셨다. 팀 내 주니어 급 사원 중에 온전히 자기 담당업무를 하는 사람은 5명 중 1명뿐이니, 이걸 우리 팀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대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튼 상황은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맡게 된, (처음으로) 시작부터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였던 이 녀석은 그만큼 애정도 컸고 애착도 컸다. 카운터 파트가 워낙 다이나믹한 분들이라 화도 나고 상처도 받고 짜증도 났지만, 정말 미운 정이라는 게 있는 건지 '그래 이게 내 업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진행하던 다른 어떤 일 보다 이 녀석에 더 신경을 쓰기도 했다. 수개월 동안 이 기획에 매진하면서 싸우고, 겨우겨우 프로젝트를 띄웠더니 첫 미팅 때 만들어 놓은 기획을 다 뜯어고치자는 소리를 들었고, 또 어찌어찌 개발을 진행해서 이제 끝이 보이던 그 시점에, 이 녀석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 난 틀렸어

 
  다음에 하게 될 일에도 이렇게 맘을 쏟을 수 있을까?
 
 
 문득 '일을 일로 생각해야지 너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는 팀 차장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나는 어쩌면 이 일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있었고 감정 이입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헤어진 전 여자친구처럼 쿨하게 보내줘야 하는 녀석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별해 보았을 테니 다들 알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맥주를 한 캔 사가야겠다. 그리고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깔끔하게 보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퇴근하고 나서는 일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말자는 주의지만, 오늘 정도는 생각해도 되겠지. 안녕 나의 일아. 안녕.

 
 
ⓒ 응


오늘부턴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벌써 걱정입니다. 안하고 싶은데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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