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요즘 너의 관심사는 뭐니?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입사한지 꽉 채운 2년, 연차로는 3년차가 되는 올해. '우리는 다들 되게 잘 버티네?'라고 말하던 것이 자랑이던 같은 직군 동기 중에도 몇 명이 퇴사했고, 퇴사 예정이고, 또 퇴사를 고민 중이다. 단체 카톡방이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생기가 넘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서 그 누구 하나 먼저 이야기 하지 않고, 설령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반응은 굉장히 저조하다. "동기모임 한번 해야지?"라는 말에 모두들 "그래 해야지."라고 대답은 하지만 언제가 괜찮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그 철벽같은 대답 없음에 지친 주최자는 하나둘씩 정나미가 떨어져 나가 다시는 모임을 주최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렇게 동기라는 울타리는 희미해지고 각자 혈혈단신으로 팀이며 업무며 회사 앞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때 문득 떠올릴 것이다. '외롭다. 고독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지. 원래 이런 건가. 앞으로도 이래야 하는 건가.'
 


@ 언제나 외톨이 맘의 문을 닫고
 
 
직장 내 사춘기가 가장 심해지는 3년 차. 요즘같이 취직이 어렵다는 세상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직 자리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회사를 그만두는 동기가 늘어간다. 시야를 동기들에서 회사 전체로 넓혀보면, 그런 사람들의 수는 더욱 많아진다. 더는 못 있겠어. 지친다. 하루하루가 똑같아. 스스로 발전이 전혀 없을 것 같아. 의욕이 생기지 않아. 내가 너무 무력해. 온갖 이유가 있고 심지어 그 이유에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실천할 용기는 내지 못한다. 그들은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서 퇴사라는 큰 결심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은 퇴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잃어버린 내 꿈을 찾아 떠난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놀고 먹고 쉬고 한량처럼 유유자적하고 싶은 것뿐이니까. 이 상태에서 퇴사했다간 놀라운 강도로 스스로를 압박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내가 알아
 
 
미련한 고집이든 굳은 뚝심이든 일단 회사에 좀 더 남아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가 궁금해졌다. 요즘의 나는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에 무기력하고, 연차는 쌓여가는데 스스로 발전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자괴감이 들고, 일하며 어떤 기쁨이나 동기부여조차 되지 않아 한껏 나태해 져 있는 상태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라고 안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가장 편한 것은 역시 동기이므로, 요 며칠간 동기들과 밥도 함께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면서 "요즘 너의 관심사가 뭐야?" 를 물어보았다. "갑자기 왜?" 라는 질문에는 "내가 요즘 워낙 무기력해서, 다른 사람들은 뭐에 마음을 쏟으며 사나 궁금해졌거든." 이라는 진심 가득한 대답을 해 주면서 말이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대답 몇 가지가 있었다.
 

"요즘 너의 관심사는 뭐니?"
 
 

ⓒ 이거 참 어려운 고민입니다.
  
 
A : 난 요즘 웰빙에 관심이 많아졌어. 몸이 썩어가는 것 같아서 운동을 시작했어. 좋은 거 먹고 운동하고, 그래야 좀 사람 사는 것 같잖아?
  -> A는 내가 한껏 새해 기운을 받아, 출근하기 전에 아침 운동을 다닌다는 말을 듣고 자극받아 자기도 출근 전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작 나의 새해 기운은 3월을 기점으로 그 힘을 다해서 아침 운동은커녕 하루 종일 운동을 안 하고 사는 내가 몹시 부끄러워졌다. 입만 산 녀석이 된 기분이랄까?
 

B : 적금. 이제 곧 적금 만기 일자가 다가오는데, 새로 뭘 들자니 이자가 너무 낮아. 펀드는 한번 들었다가 수익이 너무 안 나서 바로 빠졌는데.. 휴 뭐 하지?

 -> 재테크는 아무리 고민해도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나도 좀 고민을 하고 이것저것 찾아봐야 하나~ 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생각은 분명 1시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아는 사람 중에 재무설계사 있는데 소개해줄까? 라고 B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재테크는 누구한테 까면 안 돼. 자기가 혼자 해야지. 신경 쓰이잖아?" 면서 거절했다. 참 당찬 여자다.
 

C : 난 요즘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거기에 푹 빠졌어. 원래 주말마다 화성악 공부 작곡 공부를 하는 게 낙이었는데 그건 커리큘럼이 끝나서 더 안 하고, 혼자 못 치는 기타를 띵까띵까 하는 정돈데 그래도 재미있네. 
 -> ‘공연 같은 것은 안 하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남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도무지 못 하겠다. 떨리는 건 싫어.'라는 대답을 남겼다. 혼자 즐기는 것도 좋지만,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고 좋을 텐데. ‘놀이공원에 가면 롤러코스터를 탈까 안탈까’? 굉장히 궁금해졌다.
 

D : 여.름.휴.가.
 -> 해마다 기가 막힌 곳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그녀의 올해 목적지는 그리스와 터키라고 한다. 나는 굉장히 겁쟁이기 때문에 "말은 통해? 그리스 가면 국민연금 너한테 대신 내라고 사람들이 붙잡는 거 아냐?" 등의 개소리를 건넸지만, 그녀는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휴가니까 나갔다가 와야지! 집에만 있으려고 그래요, 오빠?!" 아마 그럴 것 같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E : 일에 치이면서 사는데 관심사가 어디 있어. 술이나 먹자 형.
 -> 분명 지난주 금요일에 같이 술 한잔 했는데 이번 주 금요일에도 술을 먹자니. ‘미안 이번 주엔 선약이 있어.’ 그런데 아 이말 참 씁쓸했다. 일에 치이면서 사는데 관심사는 무슨. 요즘의 내 상황이 딱 이랬기 때문일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집에 도착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서 턱 괴고 컴퓨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쓰러져 잠이 든다. 퇴근 후의 삶? 있긴 하다. 제대로 즐길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뿐이지.
 

F : 나야 최근에 차 샀으니까 이게 관심사지. 그런데 뭐 쓸 일이 없다 야.
 -> 평소 차를 언제 살지 고민이라던 F는 최근에 큰마음 먹고 차를 질렀다. 그리고 그의 첫 드라이브는 칙칙한 회사 남자동기 1과 퇴사한 여자동기 1을 태운 것이었다고 한다. "여자친구를 태우고 다녀야지 임마."라는 말에 그도 울고 나도 울고 하늘과 땅이 함께 울었다.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울려버렸네.
 

G : 영어, 미국, 여행. 난 요즘 여기에 관심이 많아.
->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국으로 여행 가고 싶다는 말로 이해했다. 아마 높은 확률로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주위 사람중에서는 여자들이 혼자 떠나는 여행에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 남자 놈들은 당장 나부터도 그럴 용기가 없는지 "혼자 가면 심심하다!"는 핑계를 왕창왕창 댄다. 사실 그렇다. 혼자 가면 재미 없을 거야.... 물론 아직 안 가봤지만..
 


@아 이거 내 얘기 같은데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내가 물어본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나 요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어서 너무 재미있어. 일을 통해 참 많은 걸 배우고 있다!"라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던진 "요즘 관심사가 뭐야?"라는 질문에 너무 안 어울리는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구 한 명쯤은 저런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정상인인가보다. 
 
 이런 방식 저런 방식,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동기들은 모두가 직장인 사춘기를 이겨 나가는 중인 것 같다. 오며 가며 만나면 눈인사에 ‘안녕’! 정도가 전부지만,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나도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지지만. 어찌 되었든 자기의 지금 상황에 맞추어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고민이 있을 때, 서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동기들이 쭉 함께하면 좋을 텐데. 다음 퇴사자는 누구일지 앞으로 떠나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우선 이 사춘기를 잘 버티려면 동기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이지 싶다. 힘내자 다들.
 
 
 

@밥이나 먹자
 
 
아 월요일이 다가왔습니다. 다음주엔 무얼 해야 할까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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