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그 땐 그랬지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 술을 한잔하는 자리였다. 전원이 직장인이던 상태에서 한 명이 청운의 꿈을 안고 중국 대륙으로 떠날 거라는 선언을 한 후 만들어진 자리여서 그런지 몰라도,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각자의 회사 생활에 대한 것이 되었다. 동기 중 가장 먼저 취직한 친구가 – 그것도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했으면서 –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다 보니, 현재 자기가 회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지낼 것 같으며, 그래서 ‘나’는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당연히 분위기는, 가벼운 듯 무겁고 무거운 듯 가벼웠다. 이렇게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을 때는 가벼운 이야기만 하면 좋으련만. 어느새 이야기는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 퇴사 및 출국을 결심한 친구가 내게 공을 넘긴 것이다. “B야, 넌 요즘 팀에 그 송곳 동기랑은 어떻게 지내?”
…..?
 송곳 동기가 대체 무슨 말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생각이 났다. 지금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그랬다. 내겐 송곳 같은 동기가 있었다.


 
 
@괜찮아 마셔 임마


입사 초였을 것이다. 우리 팀에는 나를 포함해서 2달의 간격을 두고 4명의 신입사원이 배치되었다. 위에서는 칭찬 한두 마디씩을 던지며 알게 모르게 신입 사원간에 줄을 세우려고 했고, 거기에 영향받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마 특히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어우~ 우리 팀의 에이스 N!! 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이야 W야, 넌 어떻게 그런걸 찾아냈냐? 이 짜식 이제 보니까 물건이네?”


그 말 중에서 내게 가장 신경 쓰였던 말은 아마 이것이었던 것 같다.

“크, J는 우리 팀의 아이디어 뱅크야. 뭐 얘기만 하면 척척척 나오는구나?"

전문적인 지식도 부족한 내가 그나마 기댈 구석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것 아닌데, 그땐 그 말이 참 배가 아팠다. 아, 나는 뭐지? 나는 저들에게 어떻게 각인되고 있지? 저들이 나를 부를 땐 어떻게 부를까?  

이게 너무 부럽고 배가 아팠던 당시의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그렇게 하소연을 했었다. 


“아오 우리 팀에 송곳 같은 형이 있어. 분명 같은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는데 워낙 능력이 좋아서 주머니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같이 있으려니까 괜히 비교도 되는 것 같고 힘들다 힘들어.”

차라리 좀 못되거나 나쁜 사람이면 온 맘을 다해 미워라도 할 텐데, 사람은 또 워낙 착하니 미워하진 못하겠고 나 혼자만 속으로 끙끙. 당시의 나는 어쩜 사춘기 애 쪽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불멸의 1인자!! 물론 이렇게 부르진 않았습니다.

 
대학 동기의 “송곳 형과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창피함에 실제로 얼굴이 빨개지기까지 했는데, 그건 술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어찌 어찌 넘겼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 형과는 굉장히 잘 지내고 있다. 

어느 순간 느낀 점이라지만 아이디어는 쥐어짜다 보니 나오기도 하고, 자기가 평소에 아는 것이나 관심 있는 것이 많으면 자연스레 떠오르게도 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팀에 속해 있지만, 그와 나의 업무는 확연하게 다르고, 그와 나 모두 각자의 업무에서 열심히 잘하고 있고. 누군가 우리를 모아놓고 줄을 세우고 있다는 느낌에 잠시 경쟁자라고 느꼈지만(그리고 길고 길게 본다면 정말 경쟁자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경쟁자라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너무 힘들다. 아니 무엇보다 그 좋은 사람이랑 뭐하러 비교해서 혼자 힘을 빼나.


 
 
@그래 너한텐 나도 좋은 사람이고 싶구나


동기들과의 술자리 전날, 나는 그 형과 한강으로 가서 맥주 한 캔씩을 까 마시며 신나게 서로 간의 신세 한탄을 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왔다. 경쟁자는커녕 가장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경쟁자로 생각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부러워서 혼자 질투했음 했지. 


이쯤 되어 오늘의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사족으로 한 줄을 더 남겨본다. 전 여자가 좋아요. 여러분이 착각할 수도 있는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오늘 얘기된 송곳 형은 칼럼 초반부에 나갔던 주머니를 뚫고 나간 송곳맨과는 또 다른 송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주위에는 송곳맨들이 많군요. 날카로운 남자들 같… 아 아니라니까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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