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 섬 -오키나와 소개 : 역사편


이미 몇 번이나 언급했듯이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듯한 문화를 가진 곳입니다. 지리적으로 본토와 동떨어져 있다거나 열대 지방처럼 더운 기후를 가지고 있다는 등의 특징이 오키나와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적인 배경이 현재의 오키나와의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전국 중 한국인에 대한 적대심이 가장 적은 곳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곳’이라는 말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왜 엄연히 일본인 오키나와에게 이런 말을 할까요? 오늘은 오키나와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독립된 왕국, 류큐국
 

@ 지금도 매년 재현되고 있는 류큐 국왕의 가마행렬 


원래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된 국가였습니다(나하의 유명 관광지인 슈리성이 바로 류큐 왕이 살던 성입니다!). 중국과 일본 본토, 대만, 우리나라 사이에서 무역으로 꽃을 피우던 작은 나라였죠. 그러나 19세기 후반-1872년, 일본이 강제적으로 오키나와라는 현을 만들어 자국으로 편입시킴으로써 류큐 왕국은 일본의 영토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옛날 전쟁이 빈번하던 시절 힘없는 작은 섬나라의 평범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진정한 비극은,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시작됩니다.
그해 4월부터 6월까지 벌여졌던 일본 영토 내에서 일어난 유일무이한 일본군과 미군의 지상전, 그 끔찍한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오키나와였습니다.


 

2) 끔찍했던 전쟁의 참상

 

@ 전쟁 당시의 미군 탱크


오키나와전의 참상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합니다. 공식적 사망자 수가 10만 명, 비공식적인 통계를 참고하면(현을 벗어나던 중 배에서 폭격당해 사망 등등) 당시 오키나와 주민의 1/3이 희생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커다란 희생이 발생한 가장 큰 배경으로 당시 일본군의 정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전투에서의 일본군의 목표는 ‘주민의 안전’이 아닌 ‘천황의 안전’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오키나와를 ‘버리는 패’로 생각하였으며 전 주민의 노역 동원, 폭탄 테러 강요 등 철저하게 오키나와 사람들을 이용해 가며 전쟁을 치렀습니다.



3) 집단 자결

 

@ 오키나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집단자결지’를 알리는 비석


특히나 끔찍했던 것은 ‘집단 자결’입니다. 논란이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 자결이지 사실은 일본군에 의하여 억지로 강요된 학살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오키나와 이곳저곳에서 적게는 10명 이내, 많게는 300명 이상이 집단 자결하였고 연구자에 따라 전체 자결자 수를 1,000명 이상으로 통계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공식적은 오키나와전 사망자의 1%라는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들에게는 선택 사항이 없었습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에게 죽거나, 미군에게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밖에 없어 자결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제법에는 패전국이라 하더라도 포로가 되는 것은 군인뿐이고 민간인은 보호받을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았을 리 없습니다. 궁지에 내몰린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이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군이 건네는 수류탄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학계 대부분이 인정하는 정설입니다).  




4) 전쟁의 끝, 그 후

오키나와전에서 무수한 희생을 치른 보람도 없이 일본군은 미군에게 항복하고, 오키나와는 미군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 것은 1972년 5월 15일, 전쟁이 끝나고도 27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지금도 전투기의 소음 등 미군부대 주둔으로 인한 피해가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며, 실제로 주둔 반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일본에 있는 전체 미군기지 중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오키나와 사람들은 본토 사람에 비해 크고 작은 차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낮은 시급 등 일본 본토에 비해 열악한 환경입니다.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 때문에, 교과서 등에서의 역사 왜곡 문제도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를 너무나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가진 오키나와,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자연 뒤에 숨겨진 아픔, 천천히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오키나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참고문헌 출처 : 
위키피디아 ‘오키나와 현의 역사’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D%82%A4%EB%82%98%EC%99%80_%ED%98%84%EC%9D%98_%EC%97%AD%EC%82%AC
위키피디아 ‘오키나와 섬’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D%82%A4%EB%82%98%EC%99%80_%EC%84%AC
삼성언론재단 해외리포트 ‘슬픈 섬 오키나와’
http://www.ssmedianet.org/front/library/bbs/view.php?pdsPart=pds10&pNo=2568
위키피디아 ‘沖縄戦における集団自決 (오키나와전에서의 집단자결)’
https://ja.wikipedia.org/wiki/%E6%B2%96%E7%B8%84%E6%88%A6%E3%81%AB%E3%81%8A%E3%81%91%E3%82%8B%E9%9B%86%E5%9B%A3%E8%87%AA%E6%B1%BA


 
 
 
봉짱
영원한 한량을 꿈꾸는 외국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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