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 전쟁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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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턴 생활을 할 때, 우리 층의 인턴사원은 나까지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혼자 있으면 귀여움과 보살핌의 대상이라도 되었겠지만, 다른 것이라곤 이름뿐인 쭈구리 넷이 한 번에 등장했으니, 우리는 툭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회사에서는 뭔가를 분석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꼭 ‘정성적/정량적' 분석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우리 인턴사원들에게 적용된 것은 정량적 분석을 가장한 정성적 분석이었다. 무슨 개 똥 같은 소리냐고? 쉽게 말하자면, 출근시간으로 그 사람의 태도를 평가했다는 소리다.

어떻게 되어먹은 알고리즘인지, 우리 회사의 엘리베이터는 6대나 있음에도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해 출근 시간이면 회사 입구는 디아블로를 사기 위해 밤새 줄 서서 기다리는 게이머들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대 성황을 이룬다. 함께 모여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출근하는 첫날- 법적 근무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출근한 나는 회사 입구에서 민족 대이동을 경험하고 겨우겨우 우리 층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평소에는 그닥 부지런하지 않았던 동기들이 벌써 다 출근을 해 있었다. 동기들의 출근 시간을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멀리 사는 순서대로 8시, 8시 10분, 8시 15분에 출근들을 했단다. 나는 30분이나 일찍 회사 입구에 도착했다고 뿌듯해했는데!
 
'게임열정' 비도 막지 못해!
ⓒ 디아블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 (출처 - 중앙일보 '뉴스1' 2012.05.14 기사)
 
 
 바로 그날 “xxx씨는 일찍 와서 일을 보고 있더라고요~” 라는 옆 팀장님의 말이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킨 덕분에, 다음날부터 인턴 쭈구리 넷 사이에서는 ‘근면 성실한 인턴사원’ 코스프레를 위한 출근 경쟁이 벌어졌다. 한 달간의 인턴생활 동안 출근 시간은 점점 빨라져서 어느 순간 우리 넷은 7시 50분이면 자리에서 만나 함께 사온 빵과 우유를 먹으며 아침인사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법적 근무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정식 채용 후도 아니고 인턴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가장 멀리 살아서 가장 일찍 출근하던 동기 N이 우걱우걱 빵을 씹으며 말했다.
 
“하긴,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는 건 어디나 다 똑같겠지. 팀장님들 봐, 얼마나 일찍 오시냐.”
 
 아! 맙소사!

 
 함께 빵을 먹던 우리는 N의 한마디 덕분에 그동안 눈치채지 못 했던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 출근을 하든 간에, 각 팀의 팀장님들은 항상, 이미 출근을 해 있던 것이다. 우리 넷 중 그 누구도 팀장님보다 먼저 출근하기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날, 어느새 고착화되어버린 일찍 출근하기에 흥미를 잃었던 우리에게는 ‘팀장님보다 일찍 출근하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우리 작전의 결행 일은, 우리를 포함한 신규 입사자들을 환영하기 위해 마련된 회식자리였다. 뉴 페이스인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우리는, 최초의 건배 제의 후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각자 본인의 팀장님 옆에 붙어 끊임없이 술을 권했다. 멍청이같이.
 
 다음날 조금 더 일찍 출근한다는 간단한 방법을 내버려 두고 우리는 팀장님들의 출근 시간을 늦춘다는 멍청이 같은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야 우리가 젊은 피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라고 아이디어를 냈던 N은 자기 팀장님의 주량을 확인조차 하지 못한 채 장렬히 전사하여 회식하던 식당 바닥에 널브러졌고, 여자 동기였던 S와 M은 (…… 그저 이니셜을 적은 것뿐인데 이상하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해?’라며 미션 수행을 진작에 포기했다. 남은 것은 나 혼자. 하지만 이 전장에서 팀장까지 올라간 상대의 내공은 어마어마했고, 나 역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그날 회식은 마무리되었다.(인사불성이 된 채 중간에 갑자기 사라진 N을 찾기 위해 추운 겨울날 30분 동안 밖을 헤맨 것은 비밀이다.) 미션 수행이고 나발이고 그저 집에 멀쩡히 들어간 것이 다행이었던 회식 다음날, 술병이 나버린 N과 함께 해장국을 먹는 것으로 우리의 원대한 계획은 막을 내렸다.
 
 
 
ⓒ 술먹는 술고래(이미지 출처 - M25 오피스라이프)

 
그런데 승리의 기회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외부 약속이 있다며 6시 알림과 함께 사라진 팀장님이, 그날 오랜만에 만난 술고래 친구와 함께 술독에 빠져 버렸고 다음날 무려 8시 40분에 출근을 한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이렇게 찾아오는 승리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미련한 짓을 했던가….
 
네 인턴과 팀장님 간의 출근 전쟁은 이렇게 끝이 났고, 인턴 생활 중에 팀장님보다 먼저 출근에 성공한 인턴사원은 결국 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교훈을 얻게 된 덕분에, 그 이후로 팀장님보다 먼저 출근하기- 같이 말도 안되는 목표는 다시는 갖지 않게 되었다. 적당히 적당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깨우침이다.
 
 
팀장님보다 일찍 출근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근면 성실&부지런한 청년으로 보였는지, 저를 포함한 N, S, M은 모두 최종 합격하여 지금도 같은 층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출근 시간요? 그냥 다들 적당 적당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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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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