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너 이게 재밌냐?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1.
 어느 날 J 과장님과 함께 외근중인 곳으로 팀장님이 방문(습격) 하셨다. 셋이 함께 밥을 먹는 내내 팀장님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다.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며 밥 먹는데 집중하다가, 가끔 내게 물어보시는 것이 있으면 아는 건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확인해 봐야겠다- 고 말씀 드렸다. 업무와 관련된 문답은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까지 주욱 이어졌다. 이건 밥을 먹고 후식을 먹는 건지 회의 중에 배만 채운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좀 집중해서 들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너 왜 이렇게 멍하냐. 무슨 일 있냐?”

 
 
ⓒ 이 상태로 멍때리기 대회를 나갔어야 했는데.

2.
 그 날도 어김없이 과장님과 함께 외근 중이었다. 잠깐 바람이나 쐬자며 밖으로 날 데려간 과장님은 별다른 말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내게 툭- 한마디를 건넸다.


“주위 친구들이나 동기들 중에 일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아!! 몇 명 정도는 있는 것도 같네요.”




3.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만나 술을 한잔 할 때였다. 친구들은 모두 군대 휴가 나와서 모인 놈들마냥 ‘누가누가 더 힘든가’ 배틀을 시작했다.

“우리 상사는 정말 별로야!”
“나는 제 시간에 퇴근하는 적이 절대로 없지!”
“난 출근 시간보다 1시간씩 의무적으로 일찍 출근하라는 소리를 들었어!”
“나는 퇴근 후 약속을 잡을 거면 미리 보고하고 잡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구!”

 이처럼 실로 쟁쟁한 후보들이 난립하여 순위를 정하기가 점점 어려워 지려는 찰나, 한 녀석이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말을 했다.


“일로 자아 성찰을 하고 자기를 성장시킨다고 누가 그랬냐?
삶의 행복과 완성은 퇴근 후 라이프에 달려있는 거 아니냐?”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 흐아아아아아아


“너 일이 재미있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누가 물어봤는지에 따라 대답의 수위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은 딱히 재미가 없네요. 나름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10년 후의 제 모습이 지금의 제 모습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력이 크게 늘 것 같지도 않습니다. 퇴근 후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해도 퇴근시간이 보장되지 못하니 그것도 어렵네요.” 라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회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너무나 식상한 수식어지만 직장 동료들은 가족들보다도 많이 보고, 앞으로의 내 삶에서 회사는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 일을 한다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주는 것이고, 나의 개인적 일정마저도 회사의 일정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가, 그리고 그 회사에서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다.


 

ⓒ Do it for myself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회사에 있는 높으신 분들은 자기 젊은 시절에 일을 정말 재미있게 한 사람들이야. 뭘 해도 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회사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원서를 넣으면 어지간해선 합격했고, 그 회사에 들어가서 뭘 만들더라도 신나게 팔려 나갔어. 그 중에서도 더 열심히, 더 즐기면서 일 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금 너희가 입사에서 만나는 상사들일 거야. 그 사람들은 일이 재미없다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해. ‘나 때는’ 정말 재미있고 열심히 일했고 거기에서 성취감, 보람, 보상까지 한번에 얻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너희 시대는 그렇지 않지. 들어가고 싶은 회사는커녕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돈은 벌어야 되니까 한번 지원해본 회사에서조차 떨어지고, 어찌어찌 회사에 들어간다 쳐도 그저 부속품이라는 느낌만 받을 거야. 저 사람들이 말하는 ‘나 때는’처럼 나름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성취감? 보람? 보상?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이 일을 몇 년을 더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면 답이 안 나와서 막막하고, 혹시라도 그 10년후의 모습이 내가 싫어하는 눈앞의 상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느껴지면 절망하게 되지. 전문직에 있으면 사실 일찍 퇴근해서 집에 일찍 가는 것 보다 일을 좀 더 하더라도 자기가 궁금한걸 찾아가며 해결해서 지식을 쌓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고 하는 게 개인 커리어 상으로는 훨씬 좋은 일이야. 그렇게 하다 보면 T자형 지식 중에 세로축이 깊어지는 거고, 운이 좋으면 그렇게 긴 세로축을 몇 개씩 더 만들 수 있는데 요즘 세상은 세로축을 만들 기회는 거의 없잖아? 여기에도 넣고 저기에도 넣는 구색 좋은 멀티 플레이어를 원할 뿐이지. 먹고 살려면 T자중에 가로축이라도 최대한 길게 넓혀. 요즘 세상에선 억지로라도 일에 동기부여를 해야 버텨.”

한마디 한마디가 다 내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 들고 있던 소주를 한번에 털어 넘겼다. 
억지로라도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내일은 내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늘어가는 밤이다.


 
 
ⓒ 캐리어를 가면 좀 나아질까



역시 인생의 진리는 술자리에서 나온다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술 한잔 하실래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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