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열정과 콩밭 사이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어느새 올해 근무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외근 나온 협력사도 오늘 종무식이다 뭐 다로 정신없이 바쁜 분위기다. 새해가 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해가 지나간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만한 이벤트이므로 함께 외근을 나온 과장님과 나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한껏 해이해 지기로 했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장님이 무심히 한마디를 던졌다.
 

"B씨. 일 재미 없죠?"
"일이야 뭐.. 항상 재미없죠."
"요즘 의욕도 없죠? 사실 나랑 같이 일하게 된 9월 이후부터는 의욕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아, 걸렸다.
 
 
ⓒ 아, 좋아할 일이 아닌데 참


사실은 9월이 아니라 그보다 좀 먼저부터 의욕을 잃은 채 지내고 있기는 했다. 나름 열정을 쏟아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지금의 프로젝트로 갑자기 업무가 변경되면서 '이 일도 보나 마나 하다가 바뀌겠지. 이건 내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의욕 없이 일하다 보니 재미도 없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과장님의 눈에는 그게 정확히 보였나 보다. 과장님이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데미지는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더 컸다.
 

 "요즘 뭐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 거예요? 이직 준비라던가 대학원을 간다거나?"
 "아니요 딱히 뭐 그렇지도 않죠..."
 

 잠시 동안의 정적. 이직이나 공부나,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언제나 훌륭할 정도의 자기 합리화와 핑계 만들기 덕분에 생각에서만 멈추고 실천으로는 옮기지 못했던 일. 그러고 보니 이 과장님은 평소에 영어 공부를 하면서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음 정말 심플할 정도로 명확하게 대비되는군.


 
 
ⓒ 이직 준비에다 대학원이라니 그런 정신이 있단 말인가

 
"나랑 일하면 좀 널널하지 않아요? 나도 빡세게 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아 넵. 요즘은 조금씩 여유 시간이 생기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럼 그동안 뭐라도 좀 해요. 시간 아깝잖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뭔가 따로 하고 있으면 적당히 욕 안 먹을 정도로만 일하더라도 오케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에서 마음만 떠 있으면 그건 바보지."
 


 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한마디. 어느새 회사 일에 적응은 적응대로 했고(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일에 마음을 쏟고 싶지도 않으니 그저 흘러 흘러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그게 과장님 눈에는 정확하게 보였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 비슷한 연차의 직장인들은 누구나 그렇게 마음이 뜰 수밖에 없다. 지금 때가 그런 때다. 그런데 지금 마음을 다잡고 확실한 목표를 정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지금 상태랑 다를 것이 없다. 스스로 느끼기에 발전했다거나 조금 더 나아졌다거나,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고 할만한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쉽지 않겠냐. 

 
 
ⓒ 그만해.. 날 자꾸 비참하게 만들지 마..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속으로 날아와 콕콕 박혔다. 무언가 나아갈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결심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새해 초반에는 여기에만 정신을 쏟아야겠다.



어느새 새해도 1주가 지났습니다.
이 결심은 언제까지 갈까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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