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물론 알고 있다.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현대 사회에서 업무의 기본은 분업이고 협업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특히 대기업같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분업과 협업이 기본을 넘어서 필수라는 것, 또한 몇 년간의 쭈구리 생활을 통해 터득했다.


나도 대충은 안다는 말이다.
입사한 지 3년이 꽉 찬 지금. 소위 말하는 '대가리가 잘 여문'시기 아닌가.
 

"그래 봐야 니가 모르는 게 아는 거보다 훨씬 많을 텐데 어디서 잘난 척이냐!" 고 나오면, 할 말 없다. 상사한테 혼날 때 몰라서 혼나는 게 아니라 차마 대답할 수 없어서 그냥 참고 있는 경우, 많잖아? 뭐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겠지. 그치만, 아무리 직장인 생활도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을 해야 프로 직장인이 된다고는 해도, 그게 정말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네 높으신 분들도 잘 알거라 고 생각한다.
 
 

ⓒ 안보영 안들령 안말행
 
 
쭈구리 직급의 직원들은 어떤 프로젝트에 투입될 때 혼자 투입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수와 함께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마련인데, 이 상급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업무 스타일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그치만 이 와중에도 적용되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바로 '분업과 협업'이다.
 

1.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는 상급자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하는 하급자
2. 중요한 일은 자신이 처리하는 상급자 & 간단히 서포트만 해 주면 되는 일을 담당하는 하급자
3. 일은 하지 않고 확인과 보고만 하는 상급자 &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해야 하는 하급자

 

자신이 하급자 입장이 되어 함께 일할 조합을 고르라고 할 때, 어떤 것이 제일 좋은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1번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아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어떤 형태로 일하게 될지는 99%의 확률로 상급자가 정하게 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겪어본 여러 조합 중에 가장 별로인 것은 3번이겠지만, 현실에서 저 정도의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은 2.5번의 경우가 제일 많은데, 2.5번의 형태로 하급자에게 일을 줄 때 어떤 말과 행동을 보이느냐에 따라 상급자의 이미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 그래 이런거 있잖아
 
 
내가 만났던 최악의 2.5번은 '감언이설' 형이었다. 일단 귀찮거나 작은 일이라고 보이는 것들은 하급자에게 100% 넘기고, 자신에게 떨어진 일이 조금 많다 싶으면 지분을 뚝 떼어 또 하급자에게 넘기고, 중요한 일이어도 본인이 흥미 없거나 하기 싫으면 역시 하급자에게 넘긴다. "이것만 해주세요. 이건 도와줄 수 있죠? 이건 금방 하잖아요?"라면서.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들이 쌓여있어 여력이 없을 때도 그는 계속 일을 넘긴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건 정말 간단한 거잖아요."
 


그럼 니가 하지 이 자식아.
 
 
 그 상급자는 얼마 전부터 새로운 말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는 되게 외국식 문화가 깔려있어서 직급과 관계없이 각자가 일을 도맡아 다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 되게 좋은데 이 회사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너도 한 가지 일을 도맡아 100% 마무리하는 버릇을 들여봐라."
 
정말 좋은 말이다. '내 일'을 100%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자기 업무의 절반을 뚝 떼어 내게 건넸다. 언제나처럼 일이 완수되었는지만을 확인할 것이며, 내용파악은 보고할 일이 생기면 그 직전에만 할 것이며, 그 와중에도 다른 일들을 계속 넘길 것이며, 무엇보다 책임은 지지 않을 것이다.
 
 
 슬프게도 내 대가리가 많이 영글어서, 그간 익힌 눈치 보기 기술을 쓰지 않아도 속셈이 너무 훤히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는 감언 이설. 이 정도면 충분히 최악이지 않을까?
 
 
 

ⓒ 진짜 싫음…
 
 
 
 


이게 참 듣는 그 순간에는 괜찮은 말 같은데
돌아서면 찝찝하단 말이죠…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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