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그때나 지금이나.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팀도 그대로, 담당하는 업무도 그대로, 함께 일하는 사람도 그대로, 상대해야 하는 사람도 그대로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확연하게 달라졌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나 업무적 연락에서나, 주위에서 나를 대하는 모습뿐 아니라 내게 바라는 모습, 내가 맡아야 할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2가지가 달라졌다. 나는 1살 더 나이를 먹었고, 대리가 되었다.

 

ⓒ 나이를 먹어가며 젊음을 알게 됩니다


10년 전의 내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큰 차이점은 없다. 한 살 더 먹었지만 생각은 그리 변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역시 그대로다. 그치만 사원에서 대리가 되는 것은 마치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된 것과 같아서,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여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단순히 업무를 서포트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이제 한 영역을 담당해야 하고,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이제는 확실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아는 것도 훨씬 많은 협력사의 직원이 '의사 결정을 내려 주시오 대리양반!'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볼 때면, 그 눈빛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른다.) '아직 사원이니까 잘 모를 수도 있지!' 라며 배짱 튕기던 모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혹시라도 그랬다간 '대리씩이나 되어서 그것도 몰라?' 라는 눈총을 받게 된다.
 
 

ⓒ 그것도 몰라?

 
이렇게만 보면 좋은 것 따윈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이게 나름의 맛이 있기도 하다. 협력사 분들과 일을 하다 보면 조직도상에서 내가 그분들 보다 위에 위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B님'은 이상하잖아? 그렇다고 조직도에서 더 위에 있는 사람을 'B씨' 라고 하대하기도 그렇고? 그치만 나를 부르는 공식 호칭이 'B씨' 에서 'B대리님' 이 됨에 따라, 나는 자연스레 존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그들의 눈에서도 '아 이제야 맘 편히 부르겠네!'라고 안도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이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 느껴지니, 나도 덩달아 편해진다. 서로서로 불편하지 않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 저 같은 게 대리랍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선배 중에 누군가 말하길, '회사에서의 대리는 군대에서의 일병과 같다.' 고 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위/아래를 고루 챙겨야 하지만, 쭈구리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호칭이 바뀌고 어느새 1달이나 지났지만, 사람들이 나를 '대리님'이라고 부를 때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그치만 이렇게 적응이 될 테고, 언젠가는 정말 쭈구리에서 벗어나 제 한 몫을 다 해는 훌륭한 직딩이 될 수 있겠지. 그래 봐야 돌아오는 건 스트레스와 책임뿐이라고 하면 너무 슬프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 상황에 만족하고 적응해야겠다.
 

 새해에는 그나마 덜 쭈구리이길 바래본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저를 'B씨' 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B대리' 라고 부르는 호칭에 얼른 익숙해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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