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Smart와 Hard 사이.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아- 지하철이라서 잘 안 들리네요,
어디시라구요? 네네. 그 건이요?
금방 확인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에 설치된 회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다. 어디보자 그 메일이 어디있더라... 페이지를 몇번 넘겨봤지만 어디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애플리케이션이 제공하는 화면 안에서 메일 보낸 사람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본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아 찾았다. '회신' 버튼을 눌러 답장을 보낸다.


- 안녕하세요, XXXX팀 B입니다. 문의하신 내용 메일 내 답변 추가하여 전달드립니다. 또한 함께 요청하신 자료는 첨부 파일을 통해 공유드리오니 내용 확인하시고 업무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 메일을 쓰려니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도무지 속도가 나질 않는다.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야 오타가 조금 나도 상관없지만, 공식적으로 보내는 업무 메일인지라 작은 오타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휴대폰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은 PC로 보내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신경쓰인다.

내용을 다 입력하고, 파일 첨부하기를 누른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클라우드 저장공간과 연동되어 있어, PC가 없더라도 필요한 파일을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 내가 작업한 모든 문서가 그 저장공간에 보관되기 때문에, 어떤 경로로 어느 폴더에 저장해 두었는지만 기억하고 있으면 문제없다.

업무시간이 지난 후에 급히 요청받은 업무였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잘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제 좀 편하게 갈 수 있겠지.

 

ⓒ 나도 알아..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실로 빛과 같아서 10년 전이었으면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고, 5년 전이었으면 앞으로의 비전이라고 할법한 일들이 요즘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학기술은 회사 업무에도 영향을 미쳐, 요즘 어지간한 회사에서는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도입, 스마트폰만으로도 기본적인 업무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업무시간이 지나 사무실에 없어도 긴급한 건에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 그렇다고 마냥 만세는 아니다..
 

 
 
ⓒ 어디서나 일을 하다니 생각만 해도..

 
얼마 전 일이었다. 동기가 던진 한마디에 동기 카톡방이 모처럼 뜨거워졌다.


"어휴 핸드폰을 부숴버리든가 해야지, 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어."
"아니 세상 사람들 누구나 자기 일이 제일 바쁘고 중요한 건 알겠는데, 밤이나 주말에 연락하는 건 진짜 아니지 않냐?"
"폰으로 확인 가능하시죠? 죄송하지만 확인하시고 회신 부탁드려요. 난 이 말이 왜 이렇게 싫냐 ㅋㅋㅋ"
" '죄송하지만' 이라도 붙여주면 땡큐 아니냐 ㅋㅋ 밤 10시에 문자 하나 보내면서 바로 확인 후 회신 바랍니다 는 대체 무슨 심보냐 ㅋㅋㅋ"
"야 나는 업무 카톡방이 벌써 7개가 되어버림ㅋㅋㅋ 우리 동기카톡방은 말 한마디 없는데 그방은 카톡 지옥이여 아주그냥 나가지도 못해 ㅋㅋㅋㅋ"
"기술이 발전한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야.. 지금 연락을 안받아도 어차피 내 일이라서 결국엔 해야하는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나도 모르게 퇴근 후에도 전화를 받게 되더라니까??"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이 정도만 해도 오늘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충분히 알아차렸을 테니까.

 

ⓒ 이제 알 때도 되셨죠?


적용하는 기업의 문화에 따라 형태나 정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광의적으로 스마트워크라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이메일 업무를 볼 수 있는 것부터 시작된다. 역시 기업의 전문 분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의 업무라는 것이 (전화든 회의든 메일이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보고서던 제품이든 뭐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기본적인 기능만 제공해도 급한 일은 대부분 커버가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급한' 일이 무엇인가? 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긴급하게 확인해야 하는 일. 그런 급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여기서 회사가 생각하는 스마트 워크와 직원이 생각하는 스마트 워크 사이의 괴리감이 발생하게 된다.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하고 있는데 유관부서 사람에게 전화가 온다. 혹시 급한 일인가 싶어 정신을 다잡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이시간에 웬일이세요?"
"아 갑자기 확인해야 할 일이 좀 생겨서요. 메일 검색 되시죠? xxxx건 관련된 내용 전달 좀 해주시겠어요? 보내시고 전화로 설명 좀 부탁드려요."


아 이 사람아 그게 대체 왜 급해. 그리고 당신한테나 급하지 나한텐 안 급하잖아...


이같은 레퍼토리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 제가 지금 메일 하나 보냈는데요, 얼른 내용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 그때 말했던 그거 있지? 상무님이랑 식사 중인데 궁금해하신다. 얼른 메일 뒤져서 정리 한담에 연락 좀 줘.
- 제가 지금 내용 확인이 안 되어서요. 죄송하지만 xxx 씨한테 전달 좀 해주세요.
등등등.


이처럼 업무시간 외에도 일을 시키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제공되는 기능인 '전화', 회사에서 제공하는 '스마트 워크 애플리케이션' 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구속하는 또 하나의 기능을 만들어냈으니, 카카오톡으로 대표되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다.


3인 이상이면 만들어지는 단체방은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팀 카톡방'은 기본이고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팀 내부 카톡방', '방금 설명한 카톡방에 팀장님을 추가로 초대한 업무관련 보고용 카톡방', '유관부서 실무자들과 우리팀 실무자들간에 만들어진 실무 카톡방', '우리 팀장님과 유관부서 팀장님들까지 모여있는 긴급의사결정을 위한 카톡방' 등등, 온갖 핑계거리로 만들어진 카톡방들은 우리를 업무시간이 끝났음에도 자유롭지 못하게 구속한다.


- B대리, 아까 점심에 말했던 내일 모레까지 하면 된다고 했던 것 지금 대충 정리해서 카톡으로 좀 보내줘


이 한 줄로도 충분히 설명되었으리라 믿는다.



 
 
ⓒ 핸드폰을 없앨 수도 없고…


스마트워크가 업무시간 외에도 직원들을 구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마다 '업무용으로 카톡쓰지 않기', '업무시간 외에는 연락하지 않기' 같은 캠페인을 진행한다고는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 기술은 앞으로도 점점 더 발전할텐데, 정말 급한 일일때만 연락하고 용건만 간단히 하자는 그 말들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당신은 스마트하게 일하고 있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잡혀 사는 것 같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카톡방들은 실제로 제 핸드폰에 개설된 카톡방 입니다.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누가보면 우리 다들 엄청 친한 줄 알겠어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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