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사무실 풍경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회사 일이라는 것은 참으로 다이나믹 해서, 정말 바쁜 날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는 날이 있다. 더구나 일이 폭발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면, 어떻게든 이 일을 빨리 끝마치고 집에 가버리고 싶다! 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온 신경은 PC로, 전화기로, 회의하는 상대에 쏠려있을 테니까. 그런데 '내 업무는 끝났지만', '상대의 업무가 끝나는 것을 확인해야 해서' 퇴근하지 못하고 기다리게 되는 날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은 똑같지만, 뭐랄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조금 생긴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지게 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 어디 한번 둘러볼까


우리 회사의 기본 인테리어 컬러는 흰색이다. 벽도 흰색, 천장도 흰색, 책상, 캐비닛 모두 흰색. 역시나 흰색인 내 책상은 2단 구조로 되어있다. 아래층에는 모니터와 마우스,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기 위한 노트가 올려져 있고, 상단에는 업무용 노트북과, 모니터가 비치되어 있다.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메일함 역시 흰색 배경이라, PC도 회사 배경의 일부가 된 기분이다. 모니터 위를 올려다보면 내 소속과 직급이 적혀있는 이름표가 놓여 있다. 입사한 지 어느덧 4년 차. 팀 명이 해마다 바뀌었기 때문에 이름표도 해마다 바뀌었다. 내 이름표 옆으로 파티션 너머 앉으신 옆 팀 부장님의 이름표가 보인다. 부장님의 이름표는 뒷면만 보이는데, 저 팀은 뒷면에 팀 명만 적어놓아서 그냥 이름표만 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다.
 

 노트북 왼쪽에는 옆자리에 앉는 우리 팀 부장님의 캐비닛이 놓여있다. 부장님의 옷걸이가 걸려있는 그 캐비닛의 옆면에는 내가 붙여놓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있다. 날짜를 보니 어느새 2년 전 사진이다. 우리 팀 J씨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한 술자리였는데, 우리 팀 주니어들뿐 아니라 J씨와 함께 일하는 카운터 파트의 사람들도 와서 함께 술을 마셨었다. 서로 초면이기에 어색함을 해치우자는 핑계로 얼마나 마셨는지, 그 술자리에 왔던 사람들 모두 다음날 점심에 모여 그대로 해장을 했었다.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진 속 사람들 모두가 활짝 웃고 있다. 저것은 술기운 때문인가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가. 요즘 오가며 이 사람들을 만날 때면, 다들 한결같이 건조한 눈빛들뿐인데 말이다. 사진을 보기 위해 고개를 왼쪽으로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파티션에서 갑자기 사람이 솟아났다. 옆 팀 팀장님이신데, 자신이 쓰는 화이트보드 상단의 먼지를 닦기 위해 벌떡 일어나신 것 같다.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청소를 다 해주는데 물티슈로 직접 먼지를 닦으시다니. 오가며 고개만 꾸벅하고 인사하는 사이지만, 저런 모습을 보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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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책상도 저렇게 정리해두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괜히 눈이 마주칠까 싶어 시선을 다시 내 자리로 돌린다. 모니터 오른쪽에는 업무용으로 회사에서 나눠준 탁상달력이 놓여있다. IT 회사에 다니는 주제에 지독히도 아날로그적인 사람인지라, 탁상 달력에는 업무와 관련된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다. 업무 관련된 내용은 검은색으로 적어둔 주제에 노는 날은 빨간색으로 표시해둔 것이 묘하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그 옆으로는 펜이 가득 담긴 컵 3개가 놓여있다. 퇴사자들의 짐을 정리해주면서 그들이 두고 간 펜이나 사무용품들을 모아두다 보니 어느새 컵 3개에 가득 차 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며 한 두개씩 빼갔음에도 이렇게 가득 있다니, 누가 보면 문구점 주인인줄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옆에 세워진 내 캐비닛 위에는 작은 피규어 6개가 놓여있다. 피규어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물로 받은 것을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어느새 6개가 되었다. 운 좋게도 3개씩 2쌍이 동일 캐릭터여서 묘한 통일감을 주기는 한다. 보통 이런 피규어는 UX나 디자인 센터 쪽의 사람들이 많이 올려둔다는데, 내 업무는 그와 아무 관계가 없어 더 유별나 보인다.


 
 
ⓒ 피규어 몇 개정 돈 있어도 되잖아요



이리저리 자리를 둘러보다 보니 카운터파트에서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모처럼 아무도 없이 고즈넉한 사무실 풍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전화가 오다 보니 산통이 깨지는 기분이다. 역시 야근에서 여유를 찾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지 싶다. 자, 이제 하나만 더 확인하면 내 업무도 끝이다. 얼른 끝내고 집에 가야지.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역시 퇴근이 최고


뭐니뭐니해도 집에 가는 게 제일입니다.
회사에서 찾는 여유 따위 집에서 바쁜 것만 못해요.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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