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시작의 마음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시작에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이 있다. 소개팅 상대를 처음 만날 때의 설레임일 수도 있고 자대에서 기다리고 있을 선임을 생각하는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처음'이라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감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서 '처음' 또는 '시작'이라는 것만 인지되면, 온갖 사물의 배치가 동일한 같은 건물 안에서 층만 바꿨을 뿐인데도 숨 막히게 어색한 기분이 든다거나 똑같이 생긴 화장실을 보고도 감회가 남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곳이 내가 앞으로 쓰게 될 화장실이구나...' 이런 개똥 같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공공화장실도 처음 가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 키야 이런 예를 들다니


 과연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이 선택이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나는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할지 만족할지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바로 오늘부터, 새로운 팀에 배속되어 근무하게 된 것이다. 회사가 바뀐 것도 아니고 근무하게 된 건물이 바뀐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고 업무만 바뀐 거야' 라고 생각하면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새로 맡게 되는 업무도 그동안 하던 것과 너무나 다른 분야라 아직은 확신 없이 혼란만 가득하다. 워낙 극적인 이벤트 등을 통해 팀을 옮기게 되다 보니 그동안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고등학교에서 문과/이과를 선택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경력은 모두 날아가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중졸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것이다.
.
 
 
ⓒ 이런 중졸이라면 뭐 그것도 나름 괜찮겠습니다만.

 
 새 팀으로의 배속은 났지만 아직 짐은 옮기지 못했던 오늘 아침, 원래 근무하던 층에 들러 당장 필요한 PC와 노트를 챙기던 찰나였다. 지난주까지 나의 팀장님이셨던 그분께서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투로 '일단 오늘 다녀와 보거라' 고 하셨다. 인턴 시절부터 계속 같은 팀에 있었기 때문에 나의 필사적이던 인턴 - 어리바리한 신입사원 - 뭐 좀 아는 척하던 대리 (진) - 이제 좀 부려먹을 만해진 대리 시절까지를 모두 보신 팀장님은, 그렇게 덤덤하게 '다녀와 보거라' 고 말씀해 주셨다.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압도적으로 많이 들었는데, 막상 이별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 기분을 팀장님도 똑같이 느끼셨겠지. 짐을 옮기고 난 뒤 새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시 마주치게 될 날이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학교를 떠나 전학 가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다니던 회사를 떠나 이직하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 기분이 참 묘합니다.


새로 배속되는 팀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신생팀이어서 아직 팀장님도, 소속 조직도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곳도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한 상태다. 아마도 업무는 stop 상태일 테고, 운영성 업무만 겨우겨우 이어나가고 있을 테니 말 그대로 붕 뜬 상태랄까- 그런 모습을 보자니 스트레스도 받고 힘들기도 했지만 기존에 안정적으로 잘 기반을 닦아 놓았던 곳을 박차고 뛰어나온 나의 선택이 과연 잘한 일인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역시 그 갈림길에서 가던 길 그대로 쭉 갔어야 했던 건가?
 


누구나 갈림길에서는 고민하게 된다. 이 길은 가기 편한 길일까? 끝에는 뭐가 있을까? 그러나 결국에는 선택을 하게 되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과 미련까지 기회비용으로 따라온다. 각각의 선택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비용은 다르며 이는 또 각자의 가치관이나 상황에 따라 달리 평가되기 때문에, 이 선택 중에서 정답은 없다. 나도 아마 한동안, 어쩌면 앞으로 계속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뿐일 게다.
 
 
루비콘 강 건너에서 내디딘 첫발이, 앞으로의 내 삶이라던가 (이건 너무 거창하다) 회사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초심자의 행운이란 녀석이 내 첫발에 가득하기를 바랄 뿐이다.




뒤숭숭할 수 있는 것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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