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동기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금요일 밤 퇴근 후, 회사 동기 몇몇이 모여 맥주 한잔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입사한지도 어느새 4년 차. 같은 일을 해 온 것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일을 해 왔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했더라도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대충 어떤 것인지는 아는 사이. 주문처럼 외워 온 '동기사랑 나라사랑' 말이 효과가 있긴 한지 다행히 아직까지 함께 어울리게 되었고, 퇴근 후에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상사 흉도 보고 서로 힘들어 죽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각자의 연애 이야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서로에게 서운한 것으로 넘어가 있었다. "왜 너희들끼리 놀 때 나 안 불러?", "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있어.", "짜증난다는 표정 짓지 마 우리가 죄지은 것 같잖아." 등등.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면 누군가는 계속 몰랐을 이야기,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으면 속병이 나서 언젠가 사이가 틀어져 버리고 말았을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그래 남자들끼리 이렇게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다 풀어야지! 오늘 자리 의미 있네!"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래, 남자들끼리는 이렇게 푸는 거지 뭐.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기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물론 이런 친구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로 접근하자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자기와 친한 사람을 일컫는 말인 '친구'. 같은 시기 또는 기간에 무엇인가를 함께 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동기'. 실제로 우리는 같은 시기에 초, 중,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절친한 사이가 된 초, 중,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거나 있었고,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하여 친밀한 사이가 된 대학 동기들이 있거나 있었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회사에 입사하여 고락을 함께한 입사 동기들과도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충분히 가능하단 소리다. 그런데 '동기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왜든 걸까. 입사 동기들은 서로 나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대학교에도 재수, 삼수 한 형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서로 성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럼 이 세상에는 이성 사람 친구라는 관계는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 얘들도 다 다른데 친구잖아요?

 
내 주위 사람 중에는 '나는 너희를 정말 정말 친하다고 생각해' 라는 맘을 증명하고자 할 때, "너흰 나한테 거의 고등학교 친구급이야!" 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 급' 이라는 특별한 등급에 나를 위치시켜주는 저 말을 듣노라면,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치 보고 필요에 의해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서 우러나 자연스럽게 친밀한 사이가 된 진실한 관계. 대학교에서나 회사생활에서도 그런 사이는 충분히 형성될 수 있지만, '성인이 되고' 만나는 사람이라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에게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기도 하다. 그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고등학교 친구' 라는 말에 이렇게 특별한 힘이 있다. 


 

ⓒ 당연히 이런 친구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입사 동기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쭈구리고 있으니 동지 의식이 느껴지지만, 나중에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 갈수록 동기들은 친구라기보다 경쟁자가 될 텐데.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맺게 되는 수많은 관계 중, 이 사람들은 적이 될까 아군이 될까? 전혀 취하지는 않았지만 술이 한잔 들어가니 평소에는 해본 적도 없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그 순간, 차를 가지고 와서 술을 마시지 않던 동기가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야, 우리 동기 xxx네 아버님이 돌아가셨대. 지금 갈사람 있냐."

 
 
 오늘 그 자리를 함께하려 했으나 일이 있어서 못 오겠다더니,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셨던 모양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답을 내리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필요하진 않았다. 이미 시간이 늦은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야 어떻게든 가겠지 뭐. 긴 말이나 움직여야 하는 이유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냥, 어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가자."

 

 그날의 술자리는 그렇게 끝났다.




친구라는 건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관계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거지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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