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너도 이 나이가 되어보면 알게 될 거야.”
“너도 이 자리에 와보면 알게 될 거야.”



 한창 혈기 왕성했던 시절의 나는 이 말이 너무나 싫었다.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행동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타인에게, 그것도 손아랫사람인 내게 납득시키지 못해서 나이나 권위를 이용해 덮어버리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떳떳하다면, 충분한 고민 끝에 내놓은 해답이라면 왜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이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려면 그 사람을 충분히 납득시키고 설득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뿌리깊은 나무의 석규세종대왕님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오직 인내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할 것이다.”

라고.

“때가 되면 알게 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어느새 사회인이 되어 버렸다. 주위에서는 아직도 “때가 되면 안다”는 말들을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처럼 그 말을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형들이, 선배들이, 어른들이 말했던 그 ‘때’라는 것을 하나씩 겪어가면서 그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이 말을 예로 들려고 했던 건 절대 아닙니다.


겉에서 보는 것과 직접 겪어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시이불견 청이불문’이라 하지 않던가. 본인이 당사자가 되어 보고, 듣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얼마 전에 회사를 옮긴 친구에게 들은 얘기다. 평소 업무 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워낙 똑 부러지고 생각도 깊어 함께 알고 지내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빛나 보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친구에게 그 사람이 예뻐서 빛나 보였던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가 ‘진지할 때는 좀 진지해라’며 욕을 먹었다.) 직장인의 삶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의 공로를 모두 가로채 간 상급자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회사의 인사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도 곁들여져, 실로 진지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까지 느껴졌다고 한다. 
 무튼 그 사람의 팀에 신규 인력이 필요하여 채용 공고가 떴고, 평소 그 분야에 관심이 있던 친구는 그 사람과의 상담 끝에 이직을 결심, 성공리에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성과를 뺏어가는 상사와 있더라도 충분히 버틸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나?

 

ⓒ 이런… 느낌이었겠지요?


그랬던 그와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금 속해있는 집단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에 있으나 자기가 제일 힘든 법이야!” 라던 내 말을 무시하고 용기 있게 움직이더니 다시 저 힘들어하는 꼴이라는 게 맘에 들지 않아, 괜히 틱틱거리며 물어보았다. 


“그 빛나는 사람 있을 거 아냐, 근데 왜 그렇게 힘들어해?” 

 그러자 그가 술을 한잔 들이키더니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빛나는 건지 알게 되어서 더 착잡할 뿐이다.”


그의 말은 이랬다. 성과를 뺏어가는 상사가 있는 것도 예상했던 그대로고, 큰 기대를 안고 옮겼지만 거기도 회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힘든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그런데 자기에게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그 ‘빛나던’ 사람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방법으로 빛나고 있더란다. 상사에게 당한 것을 똑같이 배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데 민감하고, 본인이 의식하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내 정치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하더란다. 본인이 노력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빛은 주위 사람의 것을 끌어다가 빛나고 있더라나? 태양을 생각했는데 그 빛을 이용해서 빛나는 달이었단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 모르겠더라.”

 

ⓒ 아.. 인생의 진리..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그것 또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인생의 진리. 한번 만나본 것만으로,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세상을 파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없이 많이 놓여진 선택의 기로 앞에서, 어떤 곳으로 가야 옳은 길인지 알지 못한 채 고민 가득한 발걸음을 옮기는 쭈구리로써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실전입니다 실전.
평가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살아보니 매 경기가
결승전이네요..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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