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불안

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0. 불안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3)    몸이 편안하지 아니함
4)    마음에 미안함
5)    <심리> 특정한 대상이 없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 안도감이나 확신이 상실된 심리 상태이다. 
6)    <철학>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 깃들인 허무에서 오는 위기적 의식, 이 앞에 직면해서 인간은 본래의 자기 자신, 즉 실존으로 도약한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1. 두 번째와 세 번째
첫날부터 어째 걱정이 되긴 했다. 미리 공지된 커리큘럼과는 영 동떨어진 강의 내용, 명쾌하게 설명/전달되지 못한 실무경험, 뒤죽박죽으로 꼬여버린 교재까지. 처음에는 ‘우리가 워낙 모르는 분야니까 그런걸 거야’, ‘이 부분은 좀 미심쩍지만 다른 부분은 잘 하겠지’ 라며 강사에 대한 불신감을 꾹꾹 눌렀다던 사람들의 반응이 오늘 점심시간에는 많이 달랐다. 조금씩 높아지는 언성과 부정적인 피드백. 지난 2일간의 모습으로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게 되었고, 강의실의 분위기는 너무나 뒤숭숭해졌다. 그리고 결국 첫날부터 ‘과연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싶었던 교육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사단이 나고 말았다.

그분은 아마도 기본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사람인 듯했다. 그러나 수강생의 입장이기에 별말 없이 참고 수업을 들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질문인가 공격인가 알 수 없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강사님은, 지난 이틀과 마찬가지로 어떤 질문에도 명쾌하게 답을 하지 못했고 물음의 강도는 점점 강해졌다. “첫날부터 제대로 된 답변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기본적이어서 절대 헷갈려서는 안 되는 개념부터 잘못 알고 있다.”, “교재는 본인이 만든 것이 맞느냐.” 등의 물음에 강사님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고, 10분간 쉬는 시간을 갖자고 한 뒤 강의실을 떠났다. 체한 듯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사님에게도 괜히 미안하고 그냥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뒤숭숭한 정도던 강의장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그때의 분위기는 정말…


#2. 다섯 번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만족스러운 합의점은 찾지 못했고 결국 수업은 거기에서 종료되었다. 수강생에 의한 수업 보이콧. 학창 시절은 물론 지금까지 겪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괜스레 짜증이 나고 불쾌감이 밀려왔다. 현업에서 잠시 떠나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지만, 막상 팀에 복귀했을 때 “뭘 배우고 왔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것이 없어 한심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영타 연습하고 왔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무튼 수업은 조기종료 되었고, 인사팀에서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조심히 귀가하시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바쁘신 와중에 교육에 참석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과정이 미흡하게 진행된 점에 대해 사과 말씀 드립니다…….향후 다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재 안내 드리도록 하겠으며…………… 과정 중 조기 종료된 사정과 이후 후속과정에 대해 소속 팀장님들께도 함께 안내 드리겠습니다..”


 

ⓒ 이걸 말릴수도 없고..



#3. 첫번째와 여섯번째
 뭘 굳이 팀장님한테 일찍 끝났다고 안내를 하는지. 마음속에서 불편함의 불씨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팀장님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복귀든 귀가든 처분을 기다려야 할까, 아무 말 없이 집에 가고 내일 출근하고 말할까. 설마 다시 들어오라고 하진 않겠지만 괜히 불편했다.
 새삼스레 스스로가 얼마나 쫄보인지 느끼며, 함께 교육에 온 사람들에게 거취를 물어보았다. 그들의 생각도 대부분 비슷했는지, ‘교육 와서 좀 일찍 끝나기도 하는 건데 뭐. 오늘은 그냥 가고 내일 물어보면 그때 설명하자.’ 라고들 대답했다. 동료들의 말은 한 바가지 물이 되어 쫄보 마음속의 불씨를 꺼주었다. ‘그래, 그냥 가자.’

-    위잉

“아 E씨, 무슨 일이에요?”
“대리님, 지금 사무실에 있는 W 대리님한테 연락 왔는데요… 일찍 끝났다는 연락 팀장님이 벌써 받으셨대요. 역시 아까 전화로 얘기할걸 그랬나봐요..”


-    화르륵

갑자기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해졌다. 다 꺼져버린 줄 알았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내일은.. 좀 일찍 출근해야 할 것 같다.




쫄보가 살기 참 힘든 세상입니다.


이미지출처 : 구글


쭈구리   
오늘도 하루종일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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