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오늘 인사

오늘, 인사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자로 일하고 있는 강아미 Arm입니다. 오피스 N 매니저님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과거였다면 선뜻 ‘하겠다’고 빠른 답을 했겠지만요. 시간의 흐름에 무뎌진 저는 과거의 상처, 생각이 기록된 제 일기장을 어딘가에 ‘연재’ 형식으로 공유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담스러웠습니다. 검토도 하지 않고 그저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말보다는 글로, 일기로 단번에 끄적이고는 잊은 기록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첨삭이나 검토하지 않은 날 것의 기록들이 이 공간에 공유될 예정입니다. 새로운 글을 올리기보다는 제 일기장을 보고 제안주신 만큼 과거의 일기장을 공유하는 곳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 뵙는 분들께는 반갑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첨언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실 것은, 이렇게 제가 글을 쓰는 1인으로 등장해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거나 말을 건네는 것은 아마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거라는 얘깁니다. 그저 1인분의 일기장이라 때로는 친절하지 않고 때로는 너무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길 공간입니다. 제 일기장에 오신 여러분께 환영 인사 올리며 다른 플랫폼에 일기를 공유할 기회를 주신 매니저님께도 감사합니다. 멋진 썸네일까지 더해 제 일기 글에 생명력을 주시겠다는 제안에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과거의 기록은 이곳에 공유되며 현실의 독자님들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오피스 N에 어떤 독자님들이 계신지 잘은 모르지만, 기대가 됩니다. 이후 매주 1회 글이 올라올 것입니다. 과거의 기록도, 현재의 소회도 있을 그 일기장을 통해, 독자님들 중 단 한 분께만이라도 하루 끝의 잔잔한 위로 따위를 전달 드릴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두려움이 크지만 설렘도 있습니다. 일기장을 통해 글을 만나시다가, 좀 더 궁금하시다면 제 브런치(https://brunch.co.kr/@grape) 일기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어쩐지 부끄러운 행위인데, 인사를 올려야 하니 제 소개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주소 소개만 덧붙이고 이만 말 줄이겠습니다. grape는, 포도를 먹기 두려워하기보다는 먹고 보자는 다짐을 꾸역꾸역 하던 어린 날의 제가 직관적으로 지었던 브런치 주소입니다. 어찌 되었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며 제 얘기를 하거나 글로 적는 것은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어서,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아미 Ar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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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하고 싶은 걸 계속할 용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야 했다.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됐던 어느 주말. 왕복 5시간에 육박하는 통학거리를 감내하던 나는 어느 날. 시간이 가는 게 무섭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단어만 보니 극단적인데, 시간이 간다는 것을 새삼 달리 인식하게 됐다는 거다. "시간은 어차피 가니까 하고픈 걸 하자"고 일기에 썼다. 목표가 있고, 그걸 성취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쉬웠다. 단순하게 움직였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영어영문학을 사랑해서 학과를 선택한 소녀였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의 소리를 따르면 됐다.
 
마음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미디어 쪽에서 종사하길 막연하게 바랐다. 어린 시절,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꼬마의 말에, 주변 어른들은 감내해야 할 위험과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지 시켰고, 그건 안 되나 보다 했다. 꼬마는 다른 꿈을 꿨다. '뉴스를 전하고 싶다.' '미래 직업 사진을 가져오라'는 당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나는, 기억은 흐릿하지만, 분명 'PD 수첩' 사진을 인쇄해 갔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발표 시간에 나를 부르며 "OO는 왜 PD가 되고 싶니"라고 다정히 물었던 기억이 있다. "어라, PD를 생각해서 인쇄한 사진은 아닌데요, 쌤"이라고 말하진 못했던 웃지 못할 잔상도 있다.
 
어쨌든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나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고, 통학 시간엔 주로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느라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진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 시간이 좋았다. 분명 몸이 고통스러웠지만 통학 시간 확보되는 자유. 그러니까, 책을 읽거나 자유로이 과제를 해도 누구에게도 "뭐해" "놀자"라고 방해받지 않을 자유를 "나 지하철이야"로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다양한 활동에 지원했고, 시험을 봐서 교내 저널리즘스쿨에 들어갔다. 말이야 거창한데 뭐 그냥 하고 싶은 걸 한 거다. 어차피 연애엔 관심도 없었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좋아하는 학과 공부와 스쿨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집은 멀었고, 일찍 가도 지쳐 잘 게 뻔하니, 차라리 학교 도서관서 늦도록 무언갈 하다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엘 갔다. 8시에 나가도 10시 30분이고, 9시에 나가도 11시 30분이고, 9시 30분에 나가도…. 그러니 그냥 학교서 '뽕을 뽑자'는 생각으로 있었다. 그 편이 정신적으로도 훨씬 나았다. 흔히 말하는 '집-학교-도서관'이 나에겐 즐거운 '힐링 코스'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힘든 일은 많았고, 버티지 못해 극단적 생각이 들던 날들도 손에 꼽을 수 없이 늘어났다. 그때마다 내 도피처는 미래였다.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어딘가 적어뒀던 다짐이기도 한데, 난 내 미래의 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잘 해주고 싶었다. 그 방법은, 그냥 하고픈 것에 집중하며 생활을 단순화하는 거였다. 지금도 대학 시절의 그 알 수 없던 긴장감과 평안함이 공존하던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사람은 고요함이 필요하다. 고요함 속에서 다음 계획도 찾고 나 자신을 더 투쟁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걸 타인에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요즘 말로 '마이웨이'적 성격이라 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난 '남에게 피해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생각을 조금은 했었던 것 같기도. 피해를 끼치는 건 죽어도 싫어했고, 일 욕심은 많아서 그 시간이 괴롭진 않았다. 조별 과제를 혼자 도맡아도, 나중엔 이게 다 피와 살이 되어 돌아올 거란 '이상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내가 하고픈 것과 관련해서는 내 재능을 아주 높이 끌어올리고 싶은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 생각을 담은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건 꺼렸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라 그랬던 건지, 대체로 삶의 모든 기억을 쉽게 회상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이란 바뀌기 마련이니 글을 써두면 나중에 내가 지금 생각과는 다른데 하며 놀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때가 되면 내 이름을 달고 자유롭게 글을 쓰자고 그 시기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미뤄왔다. 업무적으로 글을 쓸 기회가 여럿 생겨나면서 내 의중과는 달리 올라가거나 하는 글들이 차츰 쌓이고 난 후에야 그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된 것 같다. 용기라고 표현하기엔 맥락에 안 맞을지 모르겠으나…. 자유로운 내 생각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이제 그래도 괜찮다는,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이 '여물었다'고 허락했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하고 싶어서, 여기에 들어왔다." 과거 지나온 내 일기나 단상 노트에 적힌 짧은 구절들. 그와 비슷한 생각에서 비롯한 이런 내 주절거림을 여기에 풀어놓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근래 새로운 일터서 적응을 하고, 예전만큼 글을 쓸 기회가 없다는 것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하루하루 완전한 동그라미는 아니더라도, 각진 동그라미라도 그리던 예전과 달리,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 게 맞을까. 또 한 번 고민하게 되는 이 타이밍에, 그래도 우물가를 찾은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다. 기분 좋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오랜 확신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던 마음이 풀린다. 그냥 하면 되는 거다. 그 오래전 깨달음을 지금 이 사소한 첫출발로 강하게 상기시키려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업무라는 명목이 있어야 글을 쓴다는 생각 말고, 이전처럼. 아무것도 없어 무조건 쓰며 부딪쳐야 했던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무엇이든 날 것으로라도 써야겠다. 많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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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나는 멀미를 한다
 
오랜만에 과거의 명함들을 정리했다. 하나 하나 들여본 게 아니니 정리라는 말이 맞는지는 미지수다. 그저 하나의 주머니 속 명함들, 카드들을 꺼냈다. 다른 주머니를 꺼내 들어 거기에 넣었다. 언젠가 다른 주머니 속 명함, 카드를 한 데 모아 넣었다는 기억이 있는 곳에 넣었다. 그 안의 카드, 명함들이 보였다. 하나하나 슥슥 넘기며 훑었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줄곧 맴돌던 동네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자의로 맴돈 동네 아닌, 타의로 맴돈 동네지만, 어쩐 일인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꽤나 이 동네에서 보냈다. 수년이 흘렀더라.
 
또 다른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의 카드, 명함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 하나 정리했다. 과거엔 왜 들여볼 생각을 안 했을까. 그건 두려움이었다. 달리는 길을 되돌아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지금의 나는 이거 한 번 본다고 해서 달리는 길에 멈추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훑어볼 용기는 가졌다. 달리는 길에서 슬픈 기억이 떠올라 우울해질까봐, 그 기억이 덮칠까봐 무서워 보지 못했던 걸, 지금은 그저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 하나 훑다보면 지나온 카페, 거리, 덕수궁, 산책길, 자주 가던 상점, 서점들의 카드들이 가득했다.
 
비교적 최근의 카드 또한 먼 일처럼 아련했다. 주소를 보고는 불과 작년에 갔던 곳이란 걸 알고, 그 때의 기억을 또 떠올렸다. 상세하지는 못했다. 그저 이 카드를 받고 주소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 어디에 선 나일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회사 근처 길에 선 채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여러 기록을 훑다가 다른 주머니 하나를 또 열었다. 그 안에는 누군가가 열심히 만들었을 글귀가 인쇄된 종이 따위의 것이 있었다. 나는 참 귀엽다고 그것을 바라봤다. 언제, 누가 쓴지는 모를 그 글에서, 나는 갑자기 멀미를 느꼈다.
 
언제부터였을까. 모 일간지 인턴 시절, 나는 생각을 가진 1인이 되지 않는 것을 강요받았다. 나 역시 울면서 힘들어 했지만 순응했다.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응당 그래야만 기자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온갖 욕, 화받이 역할을 했더랬다. 그 때 우리는 울면서 덕수궁을 돌고는 다시 들어와 침울한 채 취재를 하고 글을 썼다. "왜 이리 칙칙한 옷을 입었냐"는 말에 다같이 화사한 옷을 입었다가 '얕아 얕아" 따위의 말에 다시 또 세상이 흔들렸던 어린 시절. 그 때 무얼 알았겠느냐만은, 이제는 그런 말 들으면 미친놈아 하고 무시하면 된다는 걸 아니까.
 
근데 상흔이란 건 참 웃겨서 내 안에 굵은 스크래치 따위를 낸 모양이다. 나는 사람의 주관이 무서운 인간이 되었다. 사람의 불분명함에서 참 아름다운 것들이 나온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몸은 멀미를 하는 인간이 되었다. 내 머리와 가슴이 사람의 생각, 다양한 인간의 목소리를 사랑한다고 외치는데도 내 몸은 그런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두통과 멀미를 동반하는 인간이 되었다. "감히 그래도 돼?" "감히?" 따위의 메아리가 반사적으로 몸을 감싼다. 그래서 나는, 모 일간지 인턴 시절이 내게 참 강한 근육을 길러준 시절이라고 회상하면서도, 내 안에 생겨버린 병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근원이 그 곳이라는 걸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떠한 인간인가. 인간은 나아가고 싶은 길,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어떠한 것을 희생하는가. 나는 공황장애에 걸렸고,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며,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숨 쉬기 힘들어 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람 속에 사는 일인데, 그 일 속에서 나는 매일을 아무렇지 않은 체 웃고 밝게 열심히 연기하지만, 내가 가장 돌봐야 하는 존재인 나에 대해서는 어찌 하고 있는가 따위의 생각이 다시 내게 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답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 어른이 사는 길이라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에 대하여, 내가 구태여 생각하며 상처를 받거나 생득적으로 달리 태어난 성별 따위의 조건에 내가 얽매여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근래 이슈가 그러해서인지 모르겠으나, 후배들로부터 적잖이 질문을 받는 것은 바로 성별 이슈다. 여기자여서 힘든 것은 없으세요, 여기자여서 당한 부당한 일은 없으세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깎아 내리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모른 척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있으나 없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짓지 말라는 거예요. 뭐만 하면 거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멍청한 일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어떠한 상처들을 입었다고 해서, 인간이 거기에만 얽매여 자신의 창창한 미래를 갉아 먹는다면 그 또한 너무나 슬픈 일 아닌가. 그러니 나는 그냥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볼 뿐이다. 앞을 바라본다는 것은, 언젠가는 굉장히 멋지고 희망찬 말이었다면, 지금의 내게는 뭐랄까. 가장 쿨한 말이다. 그건 꽤나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당한 일, 상처를 하나 하나 나열하면 끝도 없으며 그를 내가 어디서 말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매사에 진정성 없이 입으로만 진보를 외치는 현실 모순 분자들에게 멀미를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생과 기사가 같으라고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되어버린 작태가 나는 구역질 나는 것이다. 입으로는 앞을 외치며 곁과 주변은 나 몰라라 하는 이른바 '입진보' 이기주의자들에 대하여 나는 그저 멀미가 나는 것이다. 아픈 자는 아픈 자가 대변할 수 있고 아프지 않았던 자는 아픔에 동일시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천은 않고 공허한 동태 눈깔을 뜨고서는 입으로만 외치는 이른바 '좋은 것들'에 대하여 나는 구역질이 나는 것이다.

 

작가  강아미 Arm

작가 소개 
기자의 끄적노트 / 글을 쓰는 일을 먹고사니즘으로 정한 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상상력은 고갈됐고(그렇게 느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 투성이었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다.

작가의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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